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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중심 시장의 폐해(2019.03.20)

[출처 : 한국문화산업교류진흥원(kofice.or.kr)-게시요건 확인]

                      팬덤 중심 시장의 폐해


대한민국 가요계가 ‘아이돌 전성시대’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아이돌은 1990년대 후반 10대 청소년을 타겟으로 한 댄스그룹이 대규모 팬덤을 형성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후 2000년대 한류 열풍의 물꼬를 트고 2010년대에는 세계화 흐름에 앞장서는 역할을 아이돌이 해내면서 아이돌 음악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음악 장르로 굳어졌다. 국내 음악 산업의 중심에 아이돌이 서게 된 배경이다. 이에 따라 현재 음악 시장의 주요 소비자는 아이돌 팬덤으로 특정된다. 주목할 점은 소비자로서의 팬덤이 대중과는 다른 이중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팬덤은 자신이 지지하는 아이돌의 콘텐츠라면 무조건적으로 소비하는 수동성을 보이는 한편, 본인이 직접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는 적극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특징이 있다. 이는 국내 음악 시장이 기형적인 산업 구조를 보이는 원인이 된다. 관련해 국내 음악 시장에 나타나고 있는 명과 암,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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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2019.1.8.) 아이돌 굿즈 팔아 수천만 원 버는 `홈마`…납세 의무는 없을까



1. 아이돌 팬덤이 이끈 음반 시장의 부활, 그 이면


오늘날의 대한민국 가요계는 아이돌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K팝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콘텐츠가 국내 음악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음반 시장에서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음악 산업 관련 각종 공식 통계자료를 제공하는 가온차트가 2018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집계한 음반 판매량 상위 50개 목록을 살펴보면 49개가 아이돌의 음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 최다 판매 음반의 주인공은 방탄소년단이다. 이들의 정규 3집 리패키지 음반이 발매 약 4개월 만에 219만7808장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런가 하면 방탄소년단의 정규 3집 음반은 약 7개월간 184만9537장 팔리며 차트 2위에 이름을 올렸다. 뒤를 이어 엑소의 정규 5집 음반이 발매된 지 두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145만2030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어 워너원이 1년간 내놓은 3개 음반이 총합 202만8821장을, 이 밖에 세븐틴·트와이스·갓세븐·NCT 등이 각각의 음반으로 3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음반 시장이 자연스럽게 쇠퇴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음반 한 장의 누적 판매량이 1만 장 이상을 기록하는 경우를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은 예외다. 특히나 인기 아이돌의 경우 음반 판매량 10만 장 이상이 기본이 된 모양새다. 더욱이 방탄소년단·엑소·워너원 등 지난해 인기 3파전을 형성한 보이그룹들은 음반 연간 판매량 100만 장을 훌쩍 넘겼을 정도다. 그러면서 국내 음반 시장은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게 됐다.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의 보고서 ‘미국 세일즈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2011년 현지 CD 음반 판매량은 총 2억4000만장이었으나, 2017년에는 8760만장으로 90% 넘게 감소한 추이를 보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가온차트 기준 2011년 508만장이던 상위 100개 음반 판매량 총합이 2017년 1448만장으로 껑충 뛰어오르며 무려 285%의 성장을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국내 음반 시장의 구조가 기형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CD 음반이 일회성 소모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명의 소비자가 여러 장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아이돌 음반의 경우 1종 출시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 장의 음반마다 여러 버전이 출시되는 탓이다. 정확히는 같은 음악이 담긴 CD에 패키지와 사은품을 달리해 판매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음반표지는 물론 버전마다 가사집에 서로 다른 콘셉트의 화보를 구성하여 차이를 둔다. 이 정점에는 랜덤 사은품이 있다. 많은 아이돌 음반이 CD와 가사집 외에 포토카드와 같은 MD상품을 함께 제공하는데, 음반 패키지와 별개로 더욱 다양한 버전이 출시된다. 멤버 별로 1종 이상의 포토카드를 만들어 음반 내 무작위로 싣는 식이다. ‘내 아이돌’의 모든 모습을 간직하고 싶은 팬덤의 소장 욕구를 제대로 자극한 마케팅이다. 이에 CD, 그 자체보다는 원하는 멤버 혹은 종류의 포토카드를 수집하기 위해 여러 장의 음반을 구매하고 심지어는 팬덤 내부에서 MD상품을 교환하는 시장까지 형성됐다.


지난해 연간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한 방탄소년단 정규 3집 리패키지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LOVE YOURSELF 結 Answer)’를 예로 들면, 이 CD 음반은 총 4종의 패키지로 출시됐다. 각 버전을 나란히 놓으면 표지가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는 구성이다. 버전마다 20페이지 분량의 서로 다른 미니북(화보집)이 포함됐으며, 멤버당 4가지 버전씩 총 28장의 포토카드가 음반마다 1장씩 랜덤으로 삽입됐다. 포토카드도 표지와 마찬가지로 뒷면을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커다란 그림이 완성되는 식이다. 여기에 초회 한정 수량에는 스페셜 포토카드와 포스터가 함께 증정됐다. 이는 해당 음반이 약 4개월간 219만7808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는 데에 분명히 일조했다.



2018년 가온 연간 앨범판매량 순위
*출처: 가온차트 홈페이지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아이돌 CD 음반 마케팅을 ‘상술’로 보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소비자가 한 장만 구매하지 못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주요 소비자인 팬덤의 생각은 딴판인 모양새다. 이들은 어차피 ‘여러 장을 살 수밖에 없다면’ 그 종류라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음에 만족감을 표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팬덤이 여러 장의 CD 음반 구매를 당연시하는 이유이다. 그 배경에 아이돌 팬 사인회가 있다. 일정 기간 특정 매장에서 아이돌 음반을 구매할 시 팬 사인회에 응모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매장마다 다르지만 대개 많이 구매할수록 당첨 확률도 높아진다. 이에 따라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는 ‘팬싸컷’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팬 사인회 당첨이 확실시되는 장수를 뜻한다. 지난해 눈에 띄게 높은 ‘팬싸컷’으로 놀라움을 자아낸 아이돌이 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탄생한 프로젝트그룹 워너원이다. 이들의 경우 한시적으로 활동하는 그룹 특성상 팬 사인회 등 실제로 만날 수 있는 행사에 대한 팬덤 경쟁률이 더 치열했다는 설명이다. 이에 200장이 넘는 음반을 구매하고도 팬 사인회에 탈락했다는 워너원 팬의 SNS 후기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결국 팬 사인회 문화에 내재되어있는 아이돌 CD 음반 마케팅의 진짜 문제는 아이돌을 직접 만나고 싶은 팬심을 이용해 필요 이상의 소비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 시장 2위 규모를 자랑하는 옆 나라 일본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아이돌 문화가 발전한 일본에서는 CD 음반을 판매할 때 ‘랜덤’ 마케팅 방식을 쓸 수 없다. 현지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에 일본에서는 선응모-후구입 방식을 쓴다. 이에 따라 일본 아이돌 팬덤은 행사(일본의 경우 악수회)에 먼저 응모한 뒤 당첨된 응모권 개수만큼 음반을 사면 된다. 혜택이 보장된 한도 내에서 돈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국내 팬덤들도 도입을 원하는 제도이다.


2. 아이돌 팬덤의 음원 총공과 차트 왜곡의 상관관계


그렇다면 음원 시장은 어떨까? 음반 시장과 비교했을 때 음원 차트에서 아이돌 팬덤의 영향력은 다소 약하다. 음원 사이트 이용자가 아이돌 팬덤에만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음원 총공’ 문화다. ‘음원 총공’이란 음원 총공격을 줄인 말이다. 특정 음원이 차트에서 높은 순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해당 곡을 반복해 듣는 행위를 뜻한다. 차트 순위는 그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음악 방송프로그램 순위에도 영향을 미치는 데다 연말 시상식에서도 수상 여부에 반영되는 경우가 있기에 팬덤에서 더욱 신경 쓰는 지표 중 하나다. 이에 따라 특정 아이돌이 컴백을 예고하면 팬덤 내부에서는 ‘음원 총공팀’이 형성된다. 이들은 음원 사이트마다 차트 집계 정책을 비교·분석하여 상당히 전략적인 방식의 스트리밍을 독려한다. 대개 음원 사이트는 곡당 재생 횟수를 1시간에 1번만 인정한다. 이에 따라 팬덤은 약 1시간 분량으로 신곡과 기존 발표곡을 적절히 섞어 만든 ‘권장 스트리밍 리스트’를 배포해 해당 목록에 맞추어 음원을 스트리밍한다. ‘음원 총공’에 참여하는 팬의 수가 많을수록 그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국내 인기 최정상으로 꼽히는 방탄소년단과 엑소가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새 음반이 나올 때마다 타이틀곡으로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함은 물론, 수록곡까지 그 뒤를 이으며 상위권을 점령한다. 이를 두고 ‘줄 세우기’라는 말도 생겼다. 그런가 하면 활동이 끝난 곡이어도 ‘권장 스트리밍 리스트’에 포함됐다면 한동안 순위권을 유지한다.


이런 가운데 아이돌 팬덤의 음원 총공이 차트 왜곡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음원 총공이 일종의 ‘사재기’ 형태를 띤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현재 음원 총공 문화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섰다. 앞서 언급한 ‘음원총공팀’이 사정상 스트리밍이 어려운 일부 팬으로부터 음원 사이트 ID나 일정 금액을 모금 받아 스트리밍과 음원 파일 다운로드를 대신 해주는 식으로까지 그 방법이 진화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 소유의 기기 말고도 공기계와 추가 생성한 ID를 사용해 일당백 효과를 낸다. 이로 인해 음원 사이트 이용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새벽 시간대 차트에서 인기 아이돌의 음원이 ‘역주행’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음원 차트는 애초 현재 대중들이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을 실시간으로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러므로 아이돌 팬덤의 음원 총공이 조직적인 차원의 문화로 발전하면서 차트의 본래 의도를 해쳤다는 주장이 일부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따지고 보면 음원 사이트들이 팬심을 악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팬덤은 음원 총공을 위해 음원 사이트에 대가를 지불한다. 스트리밍 이용권을 결제한 뒤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때문에 음원 총공 문화 자체를 옳지 않은 행위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음원 사이트에서는 1시간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실시간 차트 외에도 5분 후 순위를 예측할 수 있는 차트를 보여줌으로써 팬덤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결국, 이를 두고 말이 많아지자 대대적인 음원 차트 개편이 시행됐다. 지난해 7월부터 아이돌 팬덤의 음원 총공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새벽 1시부터 6시까지 실시간 차트 순위 변화를 공개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실시간 차트는 오전 7시부터 운영이 재개된다. 단 중단되는 시간대 사용량은 공개만 되지 않을 뿐이다. 일간·주간·월간 단위 순위에는 정상적으로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프리징’이라 불리는 이번 차트 개편안이 ‘눈가리고 아웅’식의 대응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실제로 차트 개편 후에도 아이돌 팬덤의 음원 총공 열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3. 아이돌 MD 둘러싼 ‘창조 경제’의 폐해


음반과 음원이 음악 산업의 핵심이라면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핵심은 아이돌 관련 부가 산업에서 나타난다. 바로 ‘굿즈’라고 통칭되는 MD 상품이다. 아이돌 산업의 굿즈 문화는 1세대 때부터 계속되어 왔다. 문구점에서 인기 아이돌의 사진이 그려진 공책이나 엽서를 판매하던 것이 시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특정 브랜드와 협업하거나 아이돌이 직접 기획한 상품을 판매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 더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오는 2020년 아이돌 굿즈 시장의 규모가 1조 원을 돌파하리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그런 한편 기획사에서 내놓는 공식 굿즈의 질과 관련해 불만을 표하는 팬덤이 적잖다. 이들은 퀄리티 대비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가격을 꼬집고 있다. 실제로 여태 출시된 아이돌 굿즈들을 살펴보면 1만 원 이하의 물품을 찾기 힘들다. 아이돌 사진 없이 팀 로고 모양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키링이 2만 원에 판매되는 수준이다. 이처럼 디자인이나 실생활에서의 사용을 고민하지 않은 듯한 굿즈들이 고가에 판매되다 보니 팬덤 자체적으로 ‘창조 경제’ 구축에 나섰다. 기획사와 별개로 일부 팬이 직접 굿즈를 만들고, 이를 팬덤 내부에서 공동구매하며 스스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팬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굿즈 시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물품이 거래된다. 특히 멤버를 모델로 한 캐리커처와 같은 2차 창작물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한때 봉제인형이 불티나게 팔린 바 있다. 이러한 자체제작 굿즈의 경우에는 특성상 상시 판매가 불가하기 때문에 기한을 놓친 팬들이 비공식적으로 중고 거래하는 진풍경까지 나타났다.


일부 자체제작 굿즈는 그 퀄리티가 공식 굿즈에 견줄 만하다. 그 중심에 ‘홈마’, 즉 홈페이지 마스터가 만드는 굿즈가 있다. ‘홈마’는 아이돌의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개인 홈페이지나 SNS에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콘텐츠는 방송사나 기획사에서 촬영 및 공개하는 것보다 더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더욱 밀착된 아이돌의 모습은 물론, ‘홈마’에 따라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멤버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어서다.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팬덤의 지지를 얻게 된 일부 ‘홈마’는 그 팬덤을 대표하는 역할도 한다. 기념일이나 행사에 맞춰 아이돌에게 식사나 선물을 보내는 ‘서포트’를 주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팬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받는데 ‘홈마’는 그 대가로 자체제작 굿즈를 제공한다. 이런 가운데 ‘홈마’들의 굿즈는 비단 서포트 모금에 대한 보상용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홈마’ 활동을 계속해서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제력을 필요로 한다. 음악 방송프로그램은 물론 팬 사인회나 지방·해외 공연 등 유료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할애하는 시간과 돈이 막대하다. 이에 일부 ‘홈마’는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자체제작 굿즈를 판매한다. 


‘홈마’의 굿즈에는 주로 그가 직접 찍은 아이돌 사진이 사용되며 작은 액세서리부터 포토북, 영상집, 달력, 슬로건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심지어 유료 전시회를 개최하는 ‘홈마’도 있다. 이 경우 전시회가 종료되면 전시한 사진을 경매에 붙인다. 전시회 입장권 판매로 발생하는 수익에 굿즈 판매액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이에 인기 있는 아이돌 ‘홈마’의 경우 굿즈 수익만으로 억대 연봉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약 3년간 ‘홈마’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30대 여성 A씨는 “인기 아이돌의 경우 굿즈를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 대비 판매액이 월등히 높기때문에 대부분 흑자를 기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산적해 있다. 우선 아이돌의 콘텐츠를 영리 목적으로 판매한 ‘홈마’에 대해 법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다만 ‘홈마’표 콘텐츠가 공식 자료에 버금가는 홍보 효과를 자랑한다는 점에서 이를 실행으로 옮긴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 그런가 하면 온라인에서 거래가 진행되는 자체제작 굿즈 시장 특성상 그 과정이 투명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특히 선입금-후제작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구조인 만큼 팬들로부터 거액을 입금받아놓고 물품을 제작하지 않은 상태로 잠적하는 ‘홈마’의 수도 상당하다. 이로 인해 금전적 피해를 경험, 문제의 ‘홈마’를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는 20대 여성 B씨는 “판매 사기와 관련해 혐의를 입증하려면 ‘홈마’가 돈을 받은 뒤 굿즈 제작과 배송에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야 한다. 그런데 ‘홈마’가 입금 초기 샘플용으로 굿즈를 소량 제작한 정황이 인정돼 결국은 책임을 묻지 못했다”며, “심지어 이 ‘홈마’가 이전에 다른 아이돌 팬덤에서도 똑같은 사기를 저질렀다고 한다.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4. 경제 주체로 존중받아야 할 아이돌 팬덤


국내 음악 시장이 아이돌 팬덤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 짚어 봤다. 시장 논리에 따르면 기업이 특정 소비자를 타겟 삼아 맞춤형 상품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현재 국내 음악 시장이 아이돌 팬덤을 주요 소비자로 특정하고 이에 맞춰 기획과 마케팅을 선보이는 것 역시 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문제가 나타난 이유는 이 시장 전체가 아이돌 팬덤을 콘텐츠 소비자이자 경제 주체로서 존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돌을 향한 팬덤의 다소 맹목적인 애정을 악용해 기업의 수익을 창출하는 수단으로만 이용한 결과인 셈이다. 이대로 가면 결국엔 음악 시장 전체의 쇠락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이돌과 만날 수 있는 기회나 기록의 경신을 인질 삼아 CD 음반과 음원 구매를 강매하는 제도는 결코 음악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수익을 내는 데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왜곡된 음반 및 음원 차트 기록이 음악성 판단의 기준이 되면서 콘텐츠 퀄리티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팬덤 역시 보다 똑똑한 소비자가 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팬덤 1인당 수백 장의 음반을 구매하고 수백 시간 음원을 재생시킴으로써 얻어지는 ‘기록’들이 과연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음악적 성장과 연관되는지 고민해보고, 이 시장이 팬덤에게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할 필요가 있다. 내부적으로 형성된 지하 굿즈 시장에 대해서도 자정하려는 움직임이 수반되어야 한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음악 시장 규모는 5조3000억 원이다.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시장이다. 또, IFPI는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기세에 힘입어 국내 음악시장이 6조 원 규모로 성장하리라고 내다봤다. 이렇듯 최근에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다수의 K팝 아이돌이 세계 전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적을 내며 활약하는바 앞으로 관련 산업의 성장 속도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한동안 아이돌과 그 팬덤이 국내 음악 시장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재의 K팝 신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음악 시장을 문화 산업으로 이해하고 합리적인 경제 구조를 구축하려는 업계 당사자들과 팬들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ㅣ손예지 뷰어스 기자

     (출처 : 한류NOW 2019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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