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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자신과 나라의 역경을 극복한 성웅,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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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일대기를 통해 그의 강인하고 자주적인 성품을 소개하고, 한산도 대첩에서 펼친 학익진의 전략을 분석함으로 그의 뛰어난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살펴본다.

내레이션
세계전사에 유례없는 불패 신화를 이룩한 충무공 이순신은 정의, 창의, 책임완수, 희생정신의 표본이 되는 위인입니다. 어린시절의 이순신은 용감하고 통솔력이 뛰어나 마을 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대장이었고 강직한 성품의 그는 훗날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성웅이 되었습니다.
28세에 처음 치룬 무예시험 중 말에서 떨어진 이순신은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게 되는데 이를 바라보던 모든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 생각했지만 이순신은 한발로 일어나 옆에 있는 나무껍질을 벗겨 다리에 대고 걸어 나와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만큼 자립정신이 강한 이순신은 32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북방의 말단 수비장교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지만 그의 관직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강직한 성품의 이순신은 1591년 2월 유성룡의 추천으로 드디어 전라좌도 수군전도사로 임명되었고,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이순신은 왜군의  침략을 예견하고 군기 확립 ,군비 확충, 무기개발을 통해 수군의 전력 증강을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시작 하였습니다. 1592년 4월 13일 마침내 이순신이 우려했던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수십만 대군의 일본군은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조선을 일시에 침략하게 됩니다. 

임진왜란의 전세를 바꾸게 한 1592년 7월 8일의 한산도 해전은 세계 4대 해전으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해전이었습니다. 당시 73척의 왜선이 정박해 있던 견내량은 지형이 복잡하고 좁아서 아군에게 불리한 장소였는데 이순신 장군은 이 점을 간파하고 적선을 한산도의 넓은 바다로 유인하여 무방비상태의 적을 학익진법으로 집중 공격함으로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정의와 창의 책임완수,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실천적인 나라사랑의 삶을 보여주었던 성웅 이순신 자신과 나라의 역경을 극복한 진정한 명장입니다. 

학이 양 날개를 펴듯 적을 포위하는 학익진법은 한 곳에 포위된 적의 함대에 화력을 집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위력은 대단하였습니다. 동서양의 해전 연구가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해전술을 칭찬하고 연구하고 있으며 현대 해군의 주요 전술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100대민족문화상징 선정사유 : 세계 해전사에 빛날 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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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포털 - 저작권 조건 확인] (2015.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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