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메인 사진 - 출처 : source.superherostuff.com
전설의 시작
B급 SF를 사랑하는 영화학도 조지 루카스는 자신의 절친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아메리칸 조에트로프(American Zoetrope)라는 영화사를 차리고 대학 시절 호평받았던 단편인
조지 루카스가 구상한 이야기는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SF적인 배경으로 풀어내는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 장르였다. 하지만 SF 장르가 2류 소리를 들으며 대중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던 시기에 루카스의 <스타워즈,Star Wars (이하 새로운 희망, A New Hope)> (1977) 제작은 눈물겨운 고난의 연속이었다. 수많은 제작사에 제작 지원을 거절 당했고 20세기 폭스에서 그나마 관심을 보여 800만 달러의 제작비를 겨우 타낼 수 있었다. (1968년에 제작된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의 제작비가 1,200만 달러였다.)
촬영이 시작되고 자신이 원하는 세계관을 그리는데 800만 달러의 예산은 한계에 부딪혔고 추가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20세기 폭스에 눈물겨운 호소로 겨우 300만 달러의 추가 제작비를 확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작사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고 조지 루카스는 제작 기간 중 실어증 증세가 나타났을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겨우 완성된 초기 편집본으로 시사회를 열었을 때 정돈되지 않은 편집, 조악한 특수효과, 음악도 입히지 않은 사운드까지 극악의 완성도를 보이면서 영화 종사자들의 비웃음을 받은 사건은 지금도 전설로 회자되는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새로운 희망 촬영장의 조지 루카스 - 출처 : 스타워즈 홈페이지
그런데 시사회에서 이 영화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이가 있었으니 당시 <죠스, Jaws>(1975)로 북미 박스오피스 신기록을 달성하며 헐리웃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부상하고있던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의 주선으로 작곡가 존 윌리엄스를 루카스에게 소개해주는데 이 만남은 신의 한 수가 된다. 전문 편집자들을 고용해 이야기를 다듬고 존 윌리암스의 음악으로 웅장함을 더한 <새로운 희망>은 1977년 5월 개봉하여 그해 북미에서 무려 3억 달러의 흥행을 기록하며 역대 흥행 순위 1위에 오른다. 유치하다고 평가 받았던 이야기는 SF 배경에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서부극과 전쟁, 갱스터, 모험물 등의 다양한 색깔을 입혀 폭넓은 관객층의 호응을 얻었고 철학적 우화를 통해 신화적인 색채를 담아냄으로써 한 편의 오락 영화의 가치를 뛰어넘어 미국인들에게 영화사에 영원히 남을 걸작으로 칭송받기에 이른다.
<새로운 희망>이 대성공을 기록하자 조지 루카스는 시리즈로 세계관을 확장하게 되었고 <제국의 역습, The Empire Strikes Back>(1980)을 발표했다. <제국의 역습>은 전편을 뛰어넘는 속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명실공히 스타워즈 시리즈 최고의 완성도를 가진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제국의 역습>은 전편에 없었던 '에피소드 5'라는 부제를 달고 나와 6부작으로 세계관을 확장할 것이라는 복선을 던지면서 스타워즈 팬덤을 열광시켰다.
스타워즈 클래식 트릴로지 포스터 - 출처 : thecomeback.com
1983년 클래식 트릴로지의 피날레인 <제다이의 귀환, Return of the Jedi>은 3부작 가운데 평가가 가장 떨어졌지만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며 북미에서 2억5천만 달러의 빅히트를 기록했다. <스타워즈> 3부작은 눈부신 성공을 거뒀지만, 조지 루카스가 던졌던 프리퀄(Prequel, 기준이 되는 작품보다 시간상 앞서는 작품을 뜻함.) 복선은 16년의 시간이 흐른 1999년에 이르러 실현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조지 루카스가 확장하고 싶었던 스타워즈 세계관의 정교한 CG 구현이 필요했고, 90년대 들어와서 CG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실행에 옮겨진 것이다.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의 등장이 예고되자 전미가 들썩였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협, The Phantom Menace>은 당시 <새로운 희망>의 흥행기록을 추월했던 <타이타닉, Titanic>(1997)의 기록을 깰 것이라고 호언장담 했을 정도였다.
영화를 보기위해 북미 전역에서 회사에 휴가를 신청한 회사원들이 폭주했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이런 기대치와 반대로 영화는 시리즈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 수치가 빠르게 감소하며 <타이타닉>의 기록을 추월하는데는 실패했다. 이야기 보다는 기술력을 과시하는데 중점을 둔 조지 루카스의 실책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2002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2 - 클론의 습격, Attack of the Clons>과 2005년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 Revenge of the Sith>가 연달아 개봉해 흥행에 성공했지만, 프리퀄 트릴로지(Trilogy, 3부작)는 이야기를 등한시한 기술력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냈다.
프리퀄 트릴로지 이후 잠잠했던 스타워즈의 신화는 2012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스타워즈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루카스필름을 월트 디즈니가 40억 달러에 인수하게 된다. 원작자인 루카스는 창작 컨설턴트로 물러나고 디즈니가 시리즈 제작의 전권을 이어 받으며 스타워즈는 새로운 이야기로 방향을 선회한다고 선언한다. 기존 시리즈가 주인공인 스카이워커 가문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였다면, 디즈니의 스타워즈는 스카이워커와 상관없는 새로운 인물들을 통해 세계관을 확장과 세대교체를 선언한다.
2015년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The Force Awakens>로 시작되는 새로운 3부작, 그리고 스타워즈 세계관을 공유하는 새로운 인물들을 다루는 스타워즈 앤솔로지 시리즈가 공개 되며, 스타워즈는 21세기 들어서도 스페이스 오페라의 신화적 명성을 단단하게 유지하고 있다.
포스가 함께 하기를 'May the Force be with you.'
20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이라는 국가는 이주민들에 의해 탄생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영토에 오래 거주하며 긴 역사를 공유했던 아시아나 유럽의 나라들에 비해서 신화나 전설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워즈는 미국에서 대체 신화 대접을 받을 정도다. 단순히 영화가 인기에 힘입은 대우가 아닌 루카스가 스타워즈 스토리 원안을 구성할 때 세계적인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적용시킨 결과물이 빛을 본 것이다.
스타워즈는 “악의 힘에 잠식당하여 타락한 강력한 악당(다스 베이더)과 평범한 인물(루크 스카이워커)이 비범한 현자(요다)의 가르침을 통해 각성하여 절대 악을 응징한다”는 고전 신화의 설정을 통해 대중에게 큰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또 스타워즈는 현대 미국인들의 신화임과 동시에 가장 대중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매김했다. 스타워즈의 수많은 설정들이 다른 대중매체에 영향을 줬다. 스타워즈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오마주, 개그적인 요소를 부각시킨 패러디까지 미국 미디어 문화 구석구석 스타워즈의 영향력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대중 문화를 좀 더 잘 즐기려면 스타워즈를 공부해야 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스타워즈와 버락오바마 전 대통령, 미쉘 오바마 전 퍼스트레이디 - 출처 : transparent-aluminium.net
미디어의 영향은 물론이고 일상생활 속에도 스타워즈 팬덤은 깊숙하게 뿌리내려 있다. 몇 가지 사례들을 찾아보면,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힘을 포스(The Force)라고 하며, 영화 속에서 '포스가 함께 하기를'이란 대사는 스타워즈 세계관을 상징하는 명대사로 추앙받는다. 스타워즈 팬들은 서로 '포스가 함께 하기를'을 대사로 인사를 대신하며, 매년 5월 4일은 일명 '스타워즈 데이'로 지칭한다. 5월 4일이 스타워즈 데이가 된 이유는 바로 'May the Force be with you.' 라는 대사의 발음 때문이다. 즉, May(5월)와 Fourth(4일)가 이 대사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는 이유에서 5월 4일이 스타워즈 팬들에게 축제의 날이 된 것이다. 매년 5월 4일에는 전미에서 스타워즈 코스프레를 하고 각종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스타워즈 관련 행사가 진행된다.
2015년 <깨어난 포스> 개봉 당시에 영화가 국가적인 신드롬을 일으키자 스타워즈 열풍은 백악관까지 휩쓸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기자 회견에 특별 경호원으로 영화 속 제국군인 '스톰 트루퍼'를 등장 시켰고 회견 마무리 멘트로 '스타워즈 보러 갑니다.'라고 기자들에게 애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스타워즈 콘텐츠가 가진 포스
<새로운 희망> 제작 당시 조지 루카스는 자신의 연출적 한계를 명확하게 느끼고 있었다. 결국 후속작들은 다른 감독에게 맡기기도 했다. 영화감독으로써 자질은 크게 부족했지만, 조지 루카스는 콘텐츠의 경영에 관해서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스타워즈 시리즈 제작을 위해 당시에 혁명적인 발상인 전담 특수효과 회사인 ILM(Industrial Light & Magic)을 설립했고 ILM은 전세계 최고의 CG 회사로 성장하며,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계의 중요한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에는 익숙한 디지털 다운로드 스트리밍 방식의 아이디어를 최초로 실현시킨 장본인 역시 조지 루카스다. 2002년 <클론의 습격>은 100% 디지털 환경에서 제작했고 배급도 디지털로 시도하며 영화 산업을 필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네마로 이전시켰다. 조지 루카스는 자신의 영화 산업적 야망을 스타워즈를 통해서 실험했고 그 성공을 통해 영화 산업은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조지 루카스의 산업적 선견지명은 제작과 상영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다. 1982년 루카스 아츠를 만들어 스타워즈를 게임화 시켰으며, 각종 머천다이즈(MD 상품 또는 굿즈)와 애니메이션, 소설, 코믹스 등을 통해서 천문학적인 부가판권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스타워즈 콘텐츠의 진정한 포스는 바로 팬들이 만들어내는 2차 문화현상이다. 스타워즈 팬들은 그저 영화를 보고 소비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 만의 스타워즈 세계관 확장에 몰두한다. 수많은 팬사이트와 인터넷 개인 영상을 통한 스타워즈 콘텐츠의 2차 창작, 그리고 501 군단으로 대표되는 스타워즈 코스프레 동호회 등 조지 루카스가 서사적인 완결성을 가지고 만들었던 단 한 편의 영화가 이제 스스로 움직이는 거대한 콘텐츠 축제의 시장으로 변모했다.
스타워즈 코스프레 행사 - 출처 : 스타워즈 홈페이지
스타워즈의 무덤, 대한민국
이렇게 전 세계인을 열광하게 만드는 스타워즈가 대한민국에서는 유독 힘을 쓰지 못한다. 1,000만 관객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대한민국 영화 시장에서 스타워즈 시리즈 최고 흥행작은 <깨어난 포스>의 327만 명이며, 스타워즈 최신작인 <라스트 제다이>의 경우 100만 관객 동원도 버거운 실정이다. 왜 유독 대한민국에서는 스타워즈의 흥행 성적이 처참할까?
여러 가지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스타워즈가 하나의 문화적인 팬덤으로 자리 잡은 국가들에 비해 스타워즈 현상으로 자리 잡을 토양이 부족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새로운 희망>은 미국 개봉 1년 이후인 1978년에 개봉했고 당시 서울 관객 35만명으로 시대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흥행을 기록했다. 하지만 후속작인 <제국의 역습>은 상황이 급변했다. 시리즈가 세계적인 흥행작으로 등극했고, 직접배급이 없었던 당시에 외국 영화를 수입해서 극장에 상영하던 시절, 스타워즈의 제작사인 20세기 폭스가 엄청난 수입가를 불러 국내 수입사들이 수입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개봉을 포기했다. 이후 <제다이의 귀환> 역시 높은 수입가가 책정돼 북미 개봉 4년이 지난 후인 1987년에 만날 수 있었다. 스타워즈 시리즈 가운데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클래식 트릴로지가 국내에 제대로 개봉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타워즈는 하나의 대중문화로써 소비되지 못했고 결국 콘텐츠의 순환 구조에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후 프리퀄 트릴로지와 디즈니로 인수된 이후에 새로운 스타워즈들이 나오고 있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된 시리즈라는 점에서 신규 관객들의 입문 난이도가 높은 것도 스타워즈가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국내 흥행성적이 떨어지는 이유로 꼽힌다.
국내에서 흥행에 참패한 <라스트 제다이> - 출처 : www.zenithnews.com
눈에 보이지 않게 흐르는 콘텐츠의 힘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흐름과 힘을 '포스'라고 앞서 서술했다. 스타워즈는 포스의 정신을 콘텐츠에 이식했다. 신화를 조각하고 그 신화를 통해 대중에 영감을 주며, 신화의 창작자는 영감을 받은 대중이 마음것 뛰어놀 수 있도록 새로운 놀거리를 던져준다. 시간이 흐르면 콘텐츠의 생명력은 으레 약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스타워즈는 그 생명력을 더욱 돈독히 다지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스타워즈로 변모하고 있다. 디즈니가 제작을 맡은 이후 여성과 인종적인 다양성을 스타워즈 세계관에 강하게 반영하여 더욱 넓은 층에게 스타워즈를 어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스타워즈는 끝없이 광활한 은하계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확장되고 있음을 느낀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1970년대 <죠스>와 함께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만든 영화로 꼽힌다. 스타워즈 이후 헐리웃은 단순하게 극장에서 상영되고 관객을 관람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극장상영에서 출발해서 끝없는 매체의 확장성과 파생상품의 개발 그리고 팬들이 콘텐츠를 재생산해내는 토양을 일구는 과정까지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진다.
대한민국 영화 시장도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대형 시장이며, 1년 1인당 영화 관람 편수는 평균 4.5편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속한다. 영화 시장 파이가 커짐에 따라 우리나라도 100억원, 많게는 200억원 이상 규모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시즌마다 관객 몰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거대 자본이 투입된 영화라도 극장 상영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의 영화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콘텐츠가 단순한 1차적인 소비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은 한국 영화계의 크나큰 리스크이며 이런 점에서 스타워즈 브랜드가 국내 영화계에 시사하는 점은 매우 크다.
영화가 극장에서 소비되는 2시간의 킬링 타임이 아닌 2시간의 거대한 환상의 꿈을 심어줄때 콘텐츠는 생명력이 부여되고, 그 생명력이 시대를 뛰어넘는 영향력을 자양분 삼아 새로운 신화로 자리 매김하는 과정을 대한민국의 콘텐츠에서 경험할 날이 올 수 있을까? 1970년대 스타워즈 클래식 트릴로지가 심어준 은하계의 꿈과 희망을 경험했던 소년, 소녀가 성장해 2017년 손녀, 손자와 함께 새로운 신화를 함께 공유하기 위해 극장에 방문한다는 사실. 정말 놀랍지 아니한가.
성명 : 한기일
약력 : 작가 겸 평론가. 팟캐스트 '명화남녀' 진행 및 동명 도서 공동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