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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Inside

아웃도어 방송의 자연 사용법 - 회복, 유희, 생존(2016.10.24)

인기 가수 이효리가 몇 년 전 제주도에 신혼집을 차린 뒤에 말했다. “해시계처럼 날이 밝으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든다.”MBC <무한도전> 팀이 찾아오자 아침부터 콩을 수확했다며 한껏 푸근해진 ‘소길댁’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떠난 것은 그녀만이 아니다. 혹독한 생업 전선에서 탈진한 사람들, 도시의 팍팍한 삶에 지친 이들이 제주도, 지리산, 강원도, 남해 등으로 터전을 옮기고 있다. 자연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는 귀농 귀촌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는 50만 명 가까이 도시를 떠났다고 한다. 또한 도시에서 살고 있더라도, 주말이나 휴가 때는 적극적으로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캠핑카가 10년 새 20배 늘었고, 캠핑 인구는 500만에 이른다고 한다.



방송가도 이런 트렌드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 TV 화면에 부쩍 초록색과 자연광이 많아지고 있다. 젊은 여성 진행자들이 예쁘게 차려 입고 도시의 맛집을 찾아다니던 올리브 TV <테이스티 로드>가 이제는 계곡에서 수륙양용차를 타고 엎치락뒤치락 한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도 스튜디오 바깥으로 뛰쳐나가 캠핑장에서 요리하고 낚시터에서 생선 낚는 모습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다. 분명 그 중에는 에코, 힐링, 자연주의 등의 단어로 표현할 만한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면면을 자세히 보면 숲이나 계곡을 무대로 한다고 해도 편안히 쉬면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장면만 보여주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냥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쉬고 회복하는 디톡스 방송에서부터 문명 세계를 떠난 극한의 생존 체험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게 펼쳐져 있다. 아웃도어 방송의 다양한 자연 사용법은 우리가 자연에 대해 느끼는 여러 감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TV가 다루는 야외 혹은 야생은 SBS <힐링캠프>의 편안한 휴식에서부터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과 같은 극단적인 서바이벌 상황에까지 스펙트럼을 펼치고 있다. KBS 2 <1박 2일>은 힐링과 생존이라는 양극단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10년 가까이 왕성하게 활동하며 야외 예능의 성공적인 전범이 되고 있다. ‘리얼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지만, 완전한 야생이라기보다는 ‘탈도시 야외 버라이어티’ 정도로 정의하는 게 맞을 것 같다. <1박 2일>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인이 경험하기 힘든 농어촌, 산 정상, 섬 등을 무대로 삼고 있다. 촬영 장소의 성격도 그렇고 장소로 움직이는 과정을 촘촘히 방송에 담는 등 ‘여행 프로그램’의 성격도 상당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형식을 빌어 일상적인 여행에서는 굳이 할 필요 없는 일을 많이 한다. 핵심적인 장치는 ‘복불복 게임’인데, 이를 통해 승자에게는 탈도시/야외가 주는 낭만과 즐거움, 패자에게는 그것이 주는 혹독한 육체적 시련을 경험하게 한다. 애초에 이런 식의 분명한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야외를 찾는 일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후 <1박 2일>과 비슷한 형태의 야외 예능이 상당수 등장해왔다. 코미디 TV의 <기막힌 외출>은 사실 <1박 2일>보다 조금 먼저 야외 버라이어티로 출발했는데, 보다 과격한 게임과 벌칙을 많이 선보였다. 그리고 같이 숙박을 한다는 게 중요했지, 특별한 장소에서 자연의 체험을 살리는 방식은 아니었다. 최근 SBS <불타는 청춘>이 40대를 넘기고 있는 왕년의 청춘 스타들이 모여 알콩달콩한 재미를 주고 있는데, 역시 그 무대가 시골이나 야외라는 점이 흥미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리 멀지 않은 국내의 한 곳을 찾아가 야외나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온다.’ <1박 2일>의 인기와 캠핑 인구의 증가는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 그리고 최근 여러 방송국에서 캠핑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프로그램 속으로 가져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MBC 에브리원은 양대 식신인 정준하 김준현을 MC로 삼아 <아찔한 캠핑>이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낸 바 있다. 야영 게임쇼라는 형태로 캠핑족 500만 시대의 트렌드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욕은 강했지만, 게스트로 레이싱 걸들을 등장시키는 등 정체성을 의심받으며 2회 방영에 그쳤다. SBS <크라우드 펀딩쇼, 투자자들>은 ‘캠핑 특집’을 꾸미며 연예계 캠핑 마니아로 소문난 배우 이광기를 특별 게스트로 출연시키기도 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캠핑 콘셉트로 야외에서 텐트나 천막을 치고 방송을 진행하며, ‘백종원의 캠핑 요리’등의 코너를 진행하기도 했다.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캠핑카라는 이동형 스튜디오와 야외 환경을 결합시킨 쇼는 분명 가능성이 있는 구성이다.

 

그런데 실제 시골이나 야외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러한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는 작위적인 모습으로 보여지기가 쉽다. 정말 도시 바깥에서 사는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기보다는, 일회적인 소풍이나 게임의 공간으로 소비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MBN의 스테디셀러 <나는 자연인이다>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200회를 넘길 정도로 장수하며 시청률 5%를 넘기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때론 동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보다 높은 시청률을 보이기도 한다. 내용은 윤택 혹은 이승윤이 오지에 혼자 살고 있는 ‘자연인’을 만나 2박3일 동안 같이 생활하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주를 보이거나 자극적인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50대 이상의 남성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올리브 TV의 '조용한 식사' -출처 : program.lifestyler.co.kr/olive/quietdining>


한국인에게 익숙한 자연과 야생, 그것은 사실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 나오는 열대 정글이나 <힐링캠프>의 안락한 잔디밭이 아니다. 시청자들이 어린 시절 살았던 산과 들의 모습이 남아 있는 ‘자연인’들의 생활 공간이다. 거기에서 나무로 직접 지은 집에서 버섯을 따고 물고기를 잡아 먹고 산다. 그게 도시 생활보다 편하고 안락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욕심 없고 경쟁 없이 살아가는 편안함이 거기에 있다. 언젠가 나도 저런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도 있다. 그게 한국의 장년, 노년에게는 현실적인 무위자연에 가까워 보이는 것이다.


MBN에서 가수 김C를 진행자로 내세워 올해 시작한 <여행생활자, 집시맨>은 <나는 자연인이다>와 캠핑족 사이의 접점을 찾아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 프로그램은 캠핑카를 내 집 삼아 그 안에서 먹고 자며 전국 각지를 유랑하는 개인 혹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다. 산골 오지에 틀어박혀 사는 ‘자연인’은 아니지만, 다른 형태로 도시를 떠나 자신 만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최근 MBC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김반장의 생활 역시 이와 통하는 면이 있다. 그는 도시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지만, 겨울에 온수도 나오지 않는 집에서 마당에 거름을 만들며 작물을 키우고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두가 그걸 따라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삶 이외의 방법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만으로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

 

나영석 PD가 <1박 2일>을 떠나 tvN에서 만들고 있는 <삼시세끼> 시리즈는 <1박 2일>과 <나는 자연인이다>의 중간 정도의 지점에 서 있는 게 아닐까 여겨진다. 이서진, 차승원 등을 농촌이나 어촌의 집에 기거하게 하는데 약간의 미션은 주지만 <신서유기>처럼 자극적인 게임을 하는 건 아니다. 제작진이 적당히 지시하는 정도의 농사 일이나 낚시를 하고, 텃밭을 가꾸고 동물을 키우면 된다. 그렇게 그 동네에서 얻은 식량으로 삼시 세 끼 밥을 해먹으면 된다. 이렇게 해서 도시 바깥에서 살고 먹는 모습을 가능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명과 완전히 절연한 삶 같은 것도 아니다. 때론 근처 장터에 가서 자재를 구해와 동물의 우리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제작진과 밀땅을 하며 삼겹살 같은 먹거리를 얻어내기도 한다. 특히 차승원이 이를 천연덕스럽게 해내며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소박한 삶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연스러운 삶’의 매력을 드러내는 게 훨씬 중요하다.


올리브 TV의 <조용한 식사>도 어떻게 보면 이런 경향과 통하는 것 같다. 이 프로그램은 분명 먹방이다. 그런데 음식을 요란하게 만드는 장면이나 그 맛을 호들갑스럽게 설명하는 장면은 전혀 없다. 김뢰하는 서해의 어느 바닷가에서 혼자 전어 요리를 먹는다. 장기용은 강화도의 야외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대하를 구워 먹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먹는 장면만 나온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 - 이것이 이 바쁜 시대의 역설적인 즐거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되어 여기저기로 여행을 떠나고, 또 잠시 자연 속에 묻혀 있다가 돌아오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좀더 욕심을 내어 주말 농장, 캠핑카 여행, 귀농을 해보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조금 불편해도 내 몸으로 자연과 부딪히고, 거기에서 얻은 것들로 맛난 한 끼를 만들어 먹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훌쩍 떠날 수 없는 이들에게 TV가 있다. 야외, 야생, 자연 속의 프로그램들이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성명 : 이명석

약력 : 대중문화비평가

[ 출처 :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 게시요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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