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를 고르는 기준 중에 으뜸은 지인들의 적극 추천이 아닐까...
나 역시 디어 마이 프렌즈(이하 디마프)를 그런 이유로 보게 되었다.
지인들의 첫마디는 캐스팅이 화려하다는 거였고,
내노라하는 여배우들의 이름을 듣자마자 그들의 조합이 너무나도 궁금해 시간나면 꼭 봐야지... 했다.
역시나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답게 첫회는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키느라 번잡스럽고 시끄럽고 어수선헀다.
그러나 회를 거듭하면서 각자 배우들은 역에 딱 알맞는 농도의 감정으로 드라마를 끌고 나갔다.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들과 함께 여성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은
여성작가의 작품이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꺼란 생각을 했다.
여성에 대한 자존감과 연대감이 유독 끈끈한 작가여서가 아닐까.
디마프에서의 여성들의 모습은 다채롭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익숙하다.
내가 여성이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나와 엄마와 언니와 친구들... 이모, 할머니의 이야기.
한국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화두가 던져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래서 디마프는 더욱 반갑다.
디마프에서 보여지는 남자들이란 하나같이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몸만이 아닌, 마음에 난 상처까지도 아직 아물지 않은 그래서 언제 터질지 불안불안한 완이 삼촌,
젊어서는 여자를 꽤 밝혔으나 나이들어 몸 불편해진 후엔 머리가 허옇게 샌 마누라만 종일 바라보기만 하는 완이 할아버지,
마누라의 보살핌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지 못할것 같은데, 밥 많이 먹는다 돈 많이 들어간다 마누라에게 늘 불평불만을 하는 석균 아저씨,
가정이 있지만, 첫사랑을 늘 곁에 두고 배회하는 동진 선배,
예술가랍시고 허세나 떨며 간간이 작품활동을 해서 결국은 돈 많은 동네 누님에게 강매하다시피 하며 연명하는 동네 찌질이 예술가들...
한편, 그런 남자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보듬어 안아주는 역할은 여자들이다.
여자.... 엄마....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운 단어가 아닐런지.
엄마세대에는 그랬다.
여자여서... 여자니까.... 여자이기 때문에....여자면서... 모든 원인에 이만큼 적합한 사유가 또 있었을까.
그래서 그걸 보고 자란 우리세대는 엄마처럼은 안살아... 를 입에 달고 살았다.
책으로 펴내도 열권이 넘을 엄마세대는 엄마같이 안 산다는 딸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어도 속으로는 으쌰으쌰 응원을 해주었을거다.
어찌되었든.
완이는 6살적의 기억으로부터 어느정도는 자유로워 진 것 같고, 그 힘으로 다시 사랑을 찾을 용기를 내게 된다.
꽃같은 청춘은 지나갔으나, 남은 인생에서 오늘이 가장 젊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희자이모는 설레이는 감정을 만끽하는 중이고,
그동안 동네 찌질이들에게 물주역할을 톡톡히 한 충남이모는 이제 슬슬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될 모양이다.
내가 제일 응원하고 있는 인물인, 정아이모...아.. 제삿날 뒷통수를 친다는 계획은 얼마나 멋진가!
인생의 반을 살아온 나는
'엄마'와 '딸'의 그 중간쯤에 있다.
여자라서 내가 해보고 싶은걸 못해 본적은 거의 없고, 오히려 여자여서 좋았던 기억이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여자여서 좋길 바랬는데,
실상 나는 그동안 운이 엄청나게 좋았던거라고 밖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는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드라마가 세상을 구원해 주는 일 따윈 드라마 작가들도 바라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난, 디어 마이 프렌즈가 상처받은 여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곁에 함께 있다는 위안을 주었으면 좋겠다.
때로는 굴욕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한 없이 작아보이는 윗 세대여도
한 때는 그들이 이 사회의 중심축이었다는 사실만으로 꼰대라 비꼬지 않았으면 좋겠고,
몸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딱 그 만큼만이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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