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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수(48)는 그 이름만으로 관객을 웃음 짓게 하는 희귀한 배우다.
인기가 높아지고 흥행하는 영화의 수가 늘어날수록 대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기가 좀처럼 어렵지만 오달수 만큼은 예외다. 어느 영화에 나오든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호감까지 얻는다. 지난해에는 영화 ‘암살’과 ‘베테랑’으로 연달아 1000만 관객을 모으는 대대적인 성공까지 거뒀다. 출연작마다 소위 ‘대박 흥행’을 이루는 그를 향해 관객들은 ‘1000만 요정’이라는 유쾌한 별명까지 붙였다. 관객과 나누는 깊은 신뢰 없이는 갖기 어려운 수식어다.
한 때 ‘명품 조연’으로 불렸던 오달수는 이제 ‘1000만 요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조연과 주연의 구분 없이 여러 영화에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는 배우로도 꼽힌다.
다양한 상업영화에 참여해온 오달수이지만 3월30일 개봉한 영화 ‘대배우’(감독 석민우·제작 영화사다)가 그에게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 영화는 오달수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이해할 만하다. 20년 동안 대학로에서 활동한 무명의 연극배우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영화의 내용이 그의 실제 삶과 어느 정도 겹치기 때문이다.
○연극배우 출신 오달수, 2002년 ‘올드보이’부터 스크린으로
‘대배우’가 처음 기획된 때는 오달수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를 촬영하던 2008년 무렵이었다. 당시 조연출이던 석민우 감독은 조연으로 참여하고 있던 오달수에게 ‘훗날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면 영화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패기 있는 젊은 영화인의 제안에 오달수는 선뜻 응했다. 이들은 앞서 영화 ‘올드보이’(2003년)와 ‘친절한 금자 씨’(2005년)에서도 연출 스태프와 출연 배우로 인연을 맺어왔던 사이이기도 했다.
언제 실현될지 알 수 없던 두 사람의 약속은 햇수로 9년 만에 완성돼 관객 앞에 소개됐다. ‘대배우’의 주인공 장성필은 연출자인 석민우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를 통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석민우 감독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지만, 영화 속 장성필의 모습은 과거 ‘가난한 연극배우’였던 오달수와 삶과 상당히 닮았다.
실제로 오달수는 “‘대배우’를 촬영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고 돌이켰다. 단지 주연배우로서 갖는 부담과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과거 경험이 자주 떠올랐고, 당시의 느낌과 기분을 다시 겪을 때가 많아서였다.
“장성필이 겪는 사건이 전부 나의 일 같아서 와락 껴안고 반가워할 수 없었다”는 오달수는 “연극배우의 삶이 여전히 영화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그들의 삶이 힘들다는 뜻이라 반갑지 않다”고 했다.
◀ 영화 '대배우' 주인공 오달수(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대배우’는 소위 ‘연극판’이라고 불리는 대학로를 주요 배경으로 그린다. 소극장을 무대 삼아 활동하는 무명의 연극배우들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영화는 오달수가 맡은 장성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2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한 무명의 배우로, 아동극 ‘플란다스의 개’를 통해 근근이 연기를 이어가며 살아간다. 생활이 넉넉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아내(진경)는 책 외판원으로 생활비를 벌면서도 휴대전화에 ‘대배우’라는 이름으로 남편의 전화번호를 저장해두고 조용하게 성공을 빈다.
그런 장성필에게도 ‘로망’은 있다. 한 때 같은 극단에서 활동하다가 타고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영화배우로 승승장구하는 설강식(윤제문)의 성공을 따르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를 좇아 영화배우가 되길 바라는 장성필은 가까스로 영화 오디션에 도전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로 불리는 영화계는 냉정하다 못해 살벌하다. 어렵게 영화에 캐스팅된 장성필은 다리가 불편한 장면을 연기하려고 망치로 양 쪽 발목을 부러질 만큼 내려치기까지 한다. 그렇게까지 하는데도 영화에 출연해 재능을 드러낼 기회를 잡기는 어렵다.
오달수도 비슷했다. 고향인 부산 지역 극단에서 연극을 처음 시작한 그는 서울로 올라와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에는 대학로에서 극단 신기루만화경을 만들고 더욱 적극적으로 연극에 빠져들었다. 영화 출연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거의 처음이었다. 그 전까지는 오직 연극에만 몰두해 살았다. 당시 새로운 얼굴을 찾던 박찬욱 감독은 연극무대로 눈을 돌렸고, 그렇게 발탁된 오달수는 스크린의 세계로 들어섰다.
영화에 입문하기까지 혹독한 시련을 겪는 극 중 장성필처럼 오달수가 보낸 시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12년 영화 ‘도둑들’에 출연하면서 처음으로 1000만 관객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이름은 알렸어도 지금처럼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도 묵묵하게 실력을 쌓으면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참여해오고, 관객과 나눈 신뢰는 무시하기 어려운 저력이 됐다. 이제 오달수는 한국영화에서 ‘전무후무한 배우’라고 불릴 정도로 자신만의 개성으로 확고한 영역을 개척했다.
더 이상 ‘가난한 연극배우’도 아니다. 오히려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로 통한다. 감독과 제작자가 가장 탐내는 배우이기도 하다. 동료 배우들까지 오달수에게 직접 러브콜을 보내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송강호와 황정민이 대표적이다. 오달수는 두 배우의 파트너로 활약하면서 ‘변호인’과 ‘국제시장’, ‘베테랑’까지 총 3편의 1000만 영화를 탄생시켰다.
최근에는 배우 김명민과 하정우도 ‘오달수의 팬’을 자처하고 있다. 김명민이 이번 ‘대배우’에 출연료마저 받지 않고 카메오로 출연한 이유 역시 오달수를 향한 애정으로 가능했다. 이미 두 사람은 코믹 사극 ‘조선명탐정’ 시리즈를 함께 해오고 있다. 하정우와도 지난해 ‘암살’부터 개봉을 앞둔 ‘터널’을 함께 하면서 오달수와의 인연을 이어간다.
오달수가 유독 남자배우들 사이에서 확실한 ‘지명도’를 보인다는 사실도 눈에 띈다. 남녀 사이의 로맨스 대신 남자와 남자가 만나 만드는 애정의 관계를 그린 ‘브로맨스’에 그만큼 치중해오고 있다는 의미다. 오달수는 “함께 해온 배우들이 많지만 누구 한 명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모두와 잘 맞았다”고 했다. “대부분 비슷한 연배라 취향도 성향도 잘 맞을 수밖에 없다”며 “서로를 향한 이해의 폭이 넓다”고는 말도 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혹여 영화에서 로맨스 연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 오달수는 “로맨스는 정열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는 배우가 맡아야 한다”면서 그 역할에 자신은 부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관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연기 자신있다.”
‘대배우’는 흥행에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주연배우로서의 오달수가 가진 저력을 다시금 확인케 하는 기회가 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오달수는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엄청난 부담감에 두통까지 생겼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앞으로 그가 보여줄 새로운 모습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높아지고 있다.
▲ '천만 요정' 오달수(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올해 내놓을 영화만 벌써 세 편이다. 가장 먼저 공개하는 ‘터널’에서는 하정우와 호흡을 맞춰 휴머니즘 짙은 인물을 그린다. 촬영을 마친 ‘국가대표2’에서는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코치 역할이다. 수애, 오연서 등 여배우들 틈에서 ‘청일점’으로 활약했다. 촬영을 앞둔 ‘마스터’를 통해서는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과 만나 통쾌한 범죄 소탕극을 완성한다.
출연 제의를 ‘수락’하는 일보다 ‘거절’할 때가 더 많은 탓에 때때로 ‘인정’에 휘둘려 영화 촬영에 나설 때도 있지만 오달수가 세운 자신만의 ‘기준’은 분명하다. 영화 선택의 첫 번째 조건은 시나리오가 얼마만큼 재미있느냐의 문제다. 아무리 친한 감독과 배우의 부탁이라고 해도 자신의 흥미를 당기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를 보다가 배가 고파서 라면 한 그릇 끓여먹고 다시 읽는다면” 그에게는 이미 재미없는 영화라는 뜻이 된다. 반대로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그를 붙잡는 시나리오도 있다. 2006년 출연했던 영화 ‘구타유발자들’이 그랬다. 오달수는 “그 맘 때 치질수술을 해서 오래 앉아있기도 어려웠지만 눈을 뗄 수 없는 시나리오였다”고 기억했다.
관객으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는 오달수는 “관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연기를 잘하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의 말은 설득력이 강하다. ‘편안함’으로 관객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그는 ‘1000만 요정’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유일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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