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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Inside

본 노래를 한국 지상파에서 들으려면? 대화가 먼저다(2017.07.13_

[ 출처 :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 게시요건 확인] 

일본대중문화 5차 개방 논의가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핵심은 지상파에서 일본 가요, 드라마, 영화가 방영될 수 있도록 하느냐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발맞춰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이 논의는, 다분히 전략적이다. 중국에서 맹위를 떨쳤던 한류가 사드 배치 이후 사실상 올 스톱됐다. 긍정적인 전망이 없진 않지만 워낙 내외로 정치적인 바람을 타기 쉬운 사안이라 해결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렇기에 대안으로 떠오르는 게 동남아시아 등과 다시 일본이다. 한류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일본은 한동안 한류 위세가 엄청났다. 그랬던 일본 내 한류가 MB의 독도 방문과 아베 정권의 우경화, 한일 위안부 협정 등 여러 문제로 잔뜩 움츠러들었다. 여전히 일본 내 한류 시장은 건재하지만 성장은 멈췄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일간 새로운 관계를 조명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관계에 첨병은 단연 문화교류다. 한일간 문화교류는 그간 기형적이었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 연말시상식인 <홍백가합전>에 한류가수들은 섰어도, 일본 가수들이 일본어 노래를 한국 지상파에서 부를 수는 없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렸어도, 일본 드라마와 영화는 적어도 한국 지상파에선 볼 수 없었다. 일본 만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한국 대중문화 주류시장 진입에는 장벽이 높다.


일본대중문화 5차 개방 논의는 역설적으로 일본이 아닌 한국의 필요에 의해서 불붙고 있다. 일본 내 한류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선 일본 내 보이지 않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 일본 방송에서 K-팝이 넘쳐흐르던 시절로,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모으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선, 한국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선 지상파에서 일본 드라마나 가요가 방송되지도 못하는 데 왜 일본만 한국 대중문화를 기꺼이 소개해야 되느냐는 일본 쪽 반응에 대응하는 논리다.  


한국 지상파에서 일본 대중문화 방송을 허용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일본 대중문화 개봉 역사를 살피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그 역사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일본 문화는 단연 경계 대상이었다. 일제 강점기 혹독한 세월의 여파, 강한 반일 감정 등으로 일본과 국교를 맺는 논의조차 한동안 불경시 됐다. 박정희 정권이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1965년 일본과 협정을 마무리했다. 이후 1968년 일본과 합작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황금박쥐>가 TBC에서 방영돼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황금박쥐> 인기로 <아이젠버그> 같은 일본 특수 촬영물과 <마징가Z>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산인양 둔갑해 지상파에서 방영됐다. 당시 방영됐던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조악한 모자이크와 블러 처리로 국적이 세탁됐다. <마징가Z>는 아메리카 피처에서 제작된 것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적이 세탁돼 한국 지상파에서 방송된 건, 무엇보다 쌌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일본의 하청을 받으면서 한일 공동 제작이란 명분을 얻었던 탓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게임으로도 출시된 <마징가Z> / 출처 : Game Planet


이런 상황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애니메이션 육성이란 국가 정책과 맞물려 일본 애니메이션 퇴조로 점차 이어졌다. 이 와중에도 1988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폭풍소년>이란 홍콩영화로 둔갑해 한국에 개봉하기도 했다. <아키라> 사례는 한국의 필요에 의해 일본 대중문화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유통이 이뤄졌다는 방증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어진 건 90년대부터다. 이미 일본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영화, 대중가요가 한국에 음성적으로 널리 퍼졌다. 방송사에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 비디오가 산처럼 쌓였던 시절이다. ‘우라까이’(베끼는 것을 일컫는 속어)도 실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하던 시절이었다. 90년대 한국 대중문화계에선 일본 방송과 노래, 영화 등을 무분별하게 베껴 눈 가리고 아웅 하던게 만연했다. 혼성그룹 룰라가 일본 가요를 그대로 표절한 ‘천상유애’를 내놓아 물의를 일으켰으며, 싱어송라이터인 홍수철도 ‘보고싶다 친구야’를 일본 노래 ‘돈보’를 표절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YS정권 당시 세계화 바람에 맞춰 유학파들이 일본 대중문화를 음성적으로 한국에 들여와 첨단 유행의 상징처럼 소비하기도 했다. 장안의 화제였던 압구정 오렌지족은, 일본 대중문화 소비를 이끌였던 장본인들이었다.


음성적으로 절정으로 치달았던 일본 대중문화가 공개적으로 개방 논의가 시작된 건 DJ정부가 들어서면서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일본을 방문해 일본 대중문화 개방 방침을 밝힌 이래 1998년 10월, 1999년 9월, 2000년 6월 등 세 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2001년 7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시정 거부에 대한 대응조치로 개방 일정이 중단됐으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2003년부터 일본 문화 개방 논의가 다시 이뤄져 2004년부터 영화, 음반, 게임 부문이 전면 개방됐다. DJ 정권 시절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 건, 사실 한국의 강렬한 필요 때문이었다.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DJ 정부는 일본의 도움이 간절했다. 2001년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기에 앞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일종의 선결 조건이었던 셈이다. 2003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이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 확대를 표명한 뒤 4차 개방이 이뤄졌다. 이즈음부터 한일FTA 논의가 시작됐다. 


역사를 살피면,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한일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한국무역협회와 한국경제협회는 18회 한일신산업무역회의를 공동으로 개최하고 한일 FTA를 체결해 글로벌 보호무역주의를 돌파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장 이후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면서 대외환경이 급변화하자 다자간 협상으로 동북아 협력을 강화하자는 전략인 것이다.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5차 개방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하지만 점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한국의 필요에 의한 논의다. 2004년 4차 개방 이후로 그간 더 이상 일본대중문화 개방에 진전은 없었다. 5차 개방에 대한 논의는 2011년 당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진행됐다가 흐지부지됐다. 당시 한류가 일본에서 거세게 일었던 시절이라 특별히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선결할 이유가 없었던 탓이 크다. K-Pop이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몰이를 했으며, 일본 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일본가수가 내한공연을 열었다. 한국 케이블에선 일본 애니메이션과 방송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이제 남은 건 지상파뿐이다. 사실 일본 드라마, 일본 가요가 한국 지상파에서 허용돼야 하느냐는 정치적인 문제다. 문화적으론 상호호혜에 맞게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그게 원칙이다. 일본 지상파에서 다시 K-Pop이 들리기 시작하려면 자연히 한국에서도 J-Pop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반일감정과 시장성이다. 2014년 JTBC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기미가요가 방영돼 상당한 논란이 일었다. 일본인 게스트 타케다 히로미츠를 환영하는 배경음악으로 기미가요가 삽입된 것이다. <비정상회담>은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출연해 다양한 시선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그간 각국 젊은이들이 출연할 때마다 그 나라의 국가를 틀었다. 기미가요는 1999년 일본 국가로 법제화됐다. 좋든 싫든 일본을 상징하는 노래다. 그럼에도 기미가요는 한국에선 틀 수가 없다. 기미가요가 욱일승천기와 더불어 한국에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비정상회담>에서 기미가요가 방영된 데 대해 민족의 존엄성과 금지를 손상시켰다고 경고 조치를 했다. 연예인들이 욱일승천기 문양과 비슷한 옷을 입어도 공개사과를 해야 할 만큼 반일감정이 높다. 아베 정권의 우익화에 대한 반감으로 더욱 반일 감정이 고조된 것도 한 원인이다. 일본 가요가 한국 지상파에서 흘러나오려면 반일 감정이 희석되기 전까지는 결코 쉽지 않다. 시장성은 또 다른 문제다. 분명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대중문화는 한국 대중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음성적으로, 또는 표절로도 상당한 영향을 줬다. X재팬을 위시로 한 J-Pop, 미야자키 하야오를 필두로 한 애니메이션, <러브레터> 등 일본 영화,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을 맡은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등 TV드라마, 무라카미 하루키를 정점으로 한 일본 문학 등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재개봉한 영화 <러브레터> / 출처 : 네이버 영화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일본 대중문화가 과거처럼 한국에서 큰 반향을 얻고 있지 못하다. 여전히 애니메이션과 게임은 인기가 높지만, 주로 덕후(일본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표현한 조어)들이 선호하는 문화다. 일본 대중문학도 히가시노 게이고 붐이 가라앉으면서 다음 주자가 아직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문화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 대중문화보다 격이 높았던 시절, 둑을 막아도 넘쳐흘러 들어왔다. 지금은 인터넷을 넘어 모바일 시대다. 굳이 지상파가 아니더라도 일본 대중문화 유통이 자유롭다. 그럼에도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이렇게 소비되는 건, 그만큼 과거보다 매력이 적다는 뜻이다. 한국 지상파 방송사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소개하기에는 시장성이 낮아 여의치 않다. 반일 감정을 넘어서 소개할 만큼 시장성이 충분하지 않다. 그렇기에 일본 대중문화 5차 개방은 정치적이며, 정책적인 결단이어야 한다.


높은 반일감정과 낮은 시장성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 지상파에서 소개돼야 한다면, 그것이 정책적인 필요 때문이라면, 차라리 그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리는 게 주효할 것 같다. 그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철저히 한국의 필요에 의해 이뤄졌지만, 저간의 사정은 감춰졌다. 복잡한 대외 정책과 아울러 복잡한 대내 정책에 의해 당위적으로 진행됐다.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시청자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왜 지금도 충분할 것 같은 일본 대중문화를 굳이 지상파에서까지 소개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공론화해야 한다. 중국 시장이 막히면서 한류가 위기에 처했고, 그 돌파구 중 하나가 일본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아직 중국을 대체할 만한 한류 시장이 없고, 지금도 여전히 일본이 한류에 가장 큰 시장이라는 걸 알려야 한다. 그리하여 양국 간 상호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고 일본 내 한류의 정체기를 끝내기 위해 일본 대중문화 추가 개방이 이뤄져야 한다는 대의를 명확히 해야 한다. 여전히 반일 감정이 크지만,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한일 관계를 위해선, 문화교류가 선결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고립 정책을 표방하는 트럼프 시대에, 한중일 관계를 새롭게 도모하기 위해서도, 일본과 문화교류가 적극적으로 재개돼야 한다는 점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일본 대중문화 추가 개방이 한국의 필요에 의해서라는 걸, 국익을 위해서라는 걸, 확고히 해야 한다. 이런 공론화가 반일감정에도 불구하고, 낮은 시장성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중문화 추가에 명분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일 위안부 협정 타결 이후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더욱 고조됐다. 아베 정권의 우익화는 반일 감정을 더욱 부채질했다. 그런 여파로 반일을 소재로 한 대중문화가 한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다룬 <명량>이 역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데 이어 친일파 암살을 그린 영화 <암살>이 1,3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의열단을 소재로 한 영화 <밀정>은 지난해 가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올 여름에는 일본 군함도 조선인 강제 징용을 그린 영화 <군함도>가 관객에 선보인다. 안중근 의사를 그린 뮤지컬 <영웅>은 2009년 초연해 올해 8번째 무대에 오른다. 가요와 TV드라마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일본에 인기가 높은 한류스타들이 반일을 소재로 한 TV드라마 출연을 꺼리기에 반일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적다. K-Pop 가수들도 여전히 일본이 큰 시장이라 반일 정서를 드러내는 행동은 삼간다. 반일 소재를 한 영화와 뮤지컬이 인기가 높은 건, 국내용이기 때문이다. 




반일정서를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명량>, <밀정>, <군함도>


이렇게 국내용으로 반일을 소재로 한 대중문화가 인기가 높다는 건, 반일 정서가 시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 시장성은 향후 2~3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일본 대중문화 5차 개방은 단기간 갑작스레 이뤄져서는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 필요하기에, 한국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알리면서 점진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반일 감정에 기댄 시장성은, 한일간 교류가 원활해지면 줄어들기 마련이다.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시장성이 고조되는 건 반일 감정에 대한 시장성이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할 것이다. 이런 파고에 맞춰 설득과 소통이 함께 하는 점진적인 논의가 진행된다면, 일본 가요를 한국 지상파에서 들을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만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대화와 소통은 문제 해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언제나 가장 옳은 방법이다. 

성명 : 전형화

약력 : 머니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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