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 게시요건 확인]
영화 ‘터널’이 개봉 2주 만에 5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흥행 경쟁이 치열한 여름 극장가에서 먼저 공개한 다른 대작들과 비교해 가장 늦게 개봉하고도 관객의 관심을 놓치지 않은 결과다. ‘터널’의 인기는 곧 주연 배우 하정우가 발휘하는 티켓파워의 힘이자, 작품 자체가 가진 완성도와 경쟁력으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극장가에서는 ‘터널’이 8월 말까지 흥행을 이어 최종 600~700만 관객을 모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터널’(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은 기존 재난영화의 공식을 과감하게 깨는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재난이 일어나고, 남은2시간 여 동안 터널에 홀로 갇힌 남자의 분투를 담아낸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기존 한국영화에서 봐 오던 재난영화와는 그 전개 방식이 다르다. ‘1인 재난극’이라고 표현해야할 작품으로, 익숙한 틀을 깬 이 과감한 시도가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 ‘터널’ 어떻게 시작 됐나
‘터널’은 소재원 작가가 2013년 내놓은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자 어린 딸을 둔 가장(하정우)이 퇴근 길 무너진 터널에 갇혀 35일 동안 홀로 목숨을 지킨 사투의 기록이다. 연출을 맡은 김성훈 감독은 2년 전 자신을 주목받게 한 이선균 조진웅 주연의 영화 ‘끝까지 간다’의 성공 이후 차기작을 고민하던 도중 이 소설을 접했다. “읽고나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감독은 소설을 원작 삼아 시나리오 각색 작업에 착수했고, 기획부터 개봉까지2년여의 준비 끝에 완성작이 탄생했다.
관객이 ‘터널’에 시선을 빼앗기는 이유는 영화가 견지하는 ‘태도’에 있다. 영화는 현실 사회의 문제와 모순을 냉정하게, 때론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잃지 않는다. 재난에 처한 국민을 구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무능력, 그 상황을 ‘생중계’하기 바쁜 언론의 태도, 구조에 전력투구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슈에서 멀어지면서 관심을 거두는 정부의 태도는 그저 영화 속 상황에만 그치지 않는다. 영화가 담은 상황, 상황은 그 자체로 현실을 반추하게 한다.
특히 ‘터널’은 잊고 싶은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잔혹한 그 현실 앞에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혹시 ‘내 일’이 될지 몰라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없는 관객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다. 영화는 부지불식간의 재난, 그 예고 없는 불운을 맞닥뜨린 한 가장의 이야기가 실은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사진 : 비에이엔터테인먼트>
‘터널’은 재난이 그저 영화 속 상상, 뉴스로 접하는 소식이 아니라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지 모를 실재가 될 수 있다는 위협감마저 안긴다. 보고 나면 통쾌하기보다 가슴 한 쪽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비슷한 재난 소재의 ‘부산행’과 비교하면 확실히 ‘재미’는 덜하지만 오히려 답을 찾아야 숙제가 주어진다. 재난에 처한 나를 구해줄 사람은 누굴까. 터널에 갇힌 이가 내 남편이라면, 과연 뭘 해야 하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무력감을 마주한다면 어떻게 견뎌야 할까.
○ 하정우가 ‘터널’을 완성하기까지
‘터널’의 거의 모든 이야기를 혼자 이끈 하정우는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과 걱정, 부담감에 휩싸여 있었다. 1년에 두 편의 영화를 꼬박꼬박 내놓는 인기 배우이지만 “긴장은 매번 반복 된다”고 말하는 그는 “‘터널’은 특히 기존 재난영화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라고 몇 차례나 거듭해 밝혔다. 결과적으로 하정우의 걱정은 ‘기우’가 됐다. 지금까지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하정우의 의도에 응답했다.
하정우는 ‘터널’을 통해 여름 극장가, 즉 대작들의 흥행 경쟁이 치열한 ‘빅 시즌’에 유독 강한 힘을 낸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어떤 흥행 배우와 만나도 언제나 자신의 영화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터널’이 개봉한 8월10일에는 이미 공유 주연의 ‘부산행’이 1000만 관객 성공으로 한창 이슈를 모으고 있었고, 이정재 주연의 ‘인천상륙작전’ 역시 600만 성공을 자축하던 때였다. 손예진이 나선 ‘덕혜옹주’ 또한 흥행에 속도가 붙은 상태였지만 ‘터널’은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서면서 2주째 그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사실 하정우는 최근 4년 동안 여름 극장가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티켓파워를 과시해왔다. 그 시작은 2013년 출연한 영화 ‘더 테러 라이브’다. 하정우의 원톱 주연영화로 당시 558만 관객을 모았다. 이어 2014년 ‘군도:민란의 시대’로는 477만 명, 지난해 ‘암살’을 통해서는 127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올해‘터널’까지 합한다면 4년 동안 여름에 내놓은 4편의 영화로 총 2800만 관객을 ‘싹쓸이’ 했다.
영화계에서 가장 많은 시나리오를 받은 배우로 통하는 하정우가 숱한 작품들 가운데 ‘터널’을 택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먼저 터널에 갇힌 주인공의 극한의 공포를 ‘고통기’가 아닌 ‘생존기’로 그린다는 점이다. 생과 사를 오가는 극 중 하정우는 그 현실을 부정하듯 자주 웃는다. 죽음에 직면한 위기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미를 드러내며 한국영화에서 손에 꼽을 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하정우가 ‘터널’에 주목한 또 다른 이유는 연출자 김성훈 감독을 향한 기대와 믿음이다. 감독의 전작 ‘끝까지 간다’를 뒤늦게 본 하정우는 “감독이 가진 특별한 감각,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터널’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고도 말했다.
<사진 : 비에이엔터테인먼트>
하정우는 감독과 상의하며 시나리오에 필요한 다양한 아이디어도 제공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는 “3박4일 동안 일본 오사카로 함께 여행을 떠나 매일10시간씩 시나리오를 두고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했다. 그 과정을 두고 하정우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이상적인 작업 과정”이라고 돌이켰다.실제로 완성된 영화에는 하정우의 아이디어가 곳곳에 담겼고, 관객을 웃게 하는 대사들 역시 그의 애드리브로 이뤄진 부분이 상당수다.
하정우는 무너진 터널에서 35일간 생존한 주인공은 “나 자신과 비슷하다”고 했다. 영화에서 생명수와 같은 물을 터널에 갇힌 또 다른 인물(남지현)에 나눠주는 모습에도 실제 자신을 투영했다는 설명이다. “안 주고 죄책감을 갖느니 물을 나눠 주겠다”는 그는 “그래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터널’의 성공은 곧 하정우와 연출자 김성훈 감독이 만든 시너지의 성공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단지 관객을 울고 웃게 하는 재난영화에 머물지 않은 영리한 선택으로 향후 한국영화에서 인정받을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특히 김성훈 감독은 ‘끝까지 간다’의 성공이 우연이 아닌 실력임을 이번 ‘터널’로 증명해보였다. 상업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감독의 등장을 충무로에서 알리고 있다.
그런 김성훈 감독은 영화 성공의 상당한 공을 하정우에 돌리고 있다. 그러면서 축구선수 박지성에 하정우를 비유하곤 한다. 감독은 박지성이 주로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축구스타’로 인정받는 것과 비교해 “하정우는 두 개의 심장에 두 개의 머리까지 갖춘 영리한 실력자”라고 평한다.
<사진 :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물론 하정우는 ‘터널’의 성공으로 영화계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최근 5~6년 동안 쉼 없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다른 배우들까지 자극해 그들의 ‘다작 참여’를 이끌어낸 하정우는 단지 참여 편수를 늘리는 데만 그치지 않고 대부분의 영화를 흥행으로도 이끌고 있다.
영화 연출에 대한 계획 역시 유효하다. 2013년 코미디 ‘롤러코스터’로 연출자로 데뷔한 하정우는 지난해 두 번째 연출작 ‘허삼관’을 완성했다. 현재 세 번째 연출영화 ‘코리아타운’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LA 한인타운을 배경으로 한인회 회장의 이야기를 그린다. 하정우는 이에 대해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한 만큼 이야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제대로 만들어보려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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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이해리
약력 : 스포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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