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고, 혼자 여행 간다. 대한민국 네 가구 중에 하나가 1인 가구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1인 가구의 숫자도 많아졌지만 그 모습도 아주 다양해졌다. 취업과 결혼이 늦어지면서 자연스레 독신 남녀가 많아졌고, 아예 결혼을 하지 않기로 작정한 적극적인 독신자들도 적지 않다. 여기에 기러기 아빠, 주말 부부, 돌싱, 독거 노인, 고시원의 취업 준비생 등 혼자 사는 사람들의 연령이나 형태도 다양해졌다. 이렇게나 늘어난 독거인들의 쓸쓸함을 누가 달래줄까? 혼밥, 혼술, 혼자만의 여행, 모두 좋다. 하지만 TV만큼 이들의 다정한 친구가 되어줄 존재는 없을 것이다. 혼자 사는 삶, 싱글턴(singleton)이 당연한 시대에 우리 방송은 어떻게 바뀌고 있고, 또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1973년에 나훈아가 주연한 <나 혼자 못 산다>라는 영화가 나왔다. 제목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리고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만 인간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이런 분위기는 이어졌다. 여러 TV 드라마에서 독신남, 독신녀는 노총각, 노처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이라는 축복을 받지 못해, 신경질적이고 사회 부적응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 이들의 전형적인 캐릭터였다. 그런데 지금의 TV는 과감히 말한다. 나 혼자 산다!
1인 가구의 생활을 리얼리티 예능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MBC의 <나 혼자 산다>다. 2013년 설 특집 파일럿으로 처음 방영되었을 때의 제목은 <남자가 혼자 살 때>였고 정규 편성된 초기에는 남성 멤버들만 있었다. 그런데 왜 ‘혼자 사는 남자’에 초점을 맞췄을까? 우선 프로그램이 연예인의 화려한 면모보다는 궁상맞은 생활상을 적극적으로 보여줄 의도였기 때문에 남성 멤버의 섭외가 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주요한 이유는 여자보다는 남자 혼자 사는 생활의 문제점을 더 크게 느껴서가 아닐까 싶다. 이른바 ‘홀아비 냄새’에 대한 관념이다. 물론 이국주, 한채아 등의 여성 멤버들도 투입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남성 출연자들의 혼자 살기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출처 : MBC <나 혼자 산다> / imbc.com>
연예인의 가정 생활을 엿보게 하는 프로그램은 주부들을 타겟으로 꾸준히 이어져왔다. ‘저렇게 돈 많고 예쁘고 멋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놓고 살까? 부럽긴 하지만 꼬투리라도 잡아볼까?’ 그렇게 집들이를 가는 기분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산다>의 포지션은 정반대다. 초반의 시청자 반응에는 이런 관점이 적지 않았다. ‘누가 남자 혼자 사는 구질구질한 집에 놀러 가고 싶겠어?’ 그런데 그 궁상맞은 일상이 큰 공감대를 자아냈다. ‘나만 아니고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출연자들은 하루 종일 게임기에 매달려 있기도 하고, 배달 음식으로 집들이를 때우기도 한다. 그런데 반대로 노홍철처럼 지나칠 정도로 청결한 사람도 있고, 김광규처럼 오랜 자취 생활의 노하우로 무장한 경우도 있었다. 시청자들은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혼자 사는 남동생이 걱정이 되어 가봤더니, 오히려 배우고 돌아오게 되네.’
1인 가구 리얼리티 이전에 일련의 동거물, 대안 가족을 그린 리얼리티들이 있었다. 스타들이 가상의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MBC <사남일녀>,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들이 동거하며 대안 가족 생활을 하는 올리브 TV 의 <셰어하우스>, SBS <일요일이 좋다-룸메이트> 등이다. <룸메이트>의 백정렬 책임프로듀서는 말했다.“혼자 사는 젊은이들이 늘면서 공동생활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서로 모르던 낯선 스타들이 한 방을 쓰며 함께 생활하면서 겪는 일들이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을 것 같다.”실제 혼자 사는 생활에 지친 이들을 위한 셰어 하우스 형태의 공동 주거 프로젝트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현실을 반영하기도 했다.
초반에는 서로 다른 개성의 연예인들이 모여들며 흥미를 끌어냈다. <빅 브라더> 식의 자극적인 동거 리얼리티 쇼가 한국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는데, 그것을 소프트한 버전으로 풀어낼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이들 프로그램의 비현실성에 거리감을 느꼈다. 거주 공간 자체가 너무 화려해서 럭셔리 하우스를 간접 체험하는 프로그램 같았다. 물론 여럿이 모여 함께 식사하고 게임도 하는 장면은 부럽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대안적인 삶을 설계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셰어하우스> <룸메이트>의 실패와 <나 혼자 산다>의 성공을 비교해보면 많은 점이 드러난다. 1인 가구 생활은 환상으로 접근하기엔 너무 현실적인 상황이 되었다. ‘화려한 싱글’ ‘멋진 남녀들의 동거 생활’이라는 판타지는 드라마로 해소하면 된다. 그러니 리얼리티 예능에서는 진짜 공감할 수 있는 것, 실용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원하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인기를 모으는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의 성격이 설명된다. 그 상당수는 의도와 상관없이 1인 가구 시청자라는 타깃에 잘 맞아떨어진 것들이다.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인터넷에서 BJ들이 운영하는 1인 방송의 포맷을 지상파로 가져왔다. 제작진은 처음에는 인터넷의 독특하고 마이너한 감성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점차 이 포맷이 1인 가구 시청자와 접촉면이 넓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는 1980년대 이후 가정에 보급된 컴퓨터를 퍼스널 컴퓨터(PC)라고 부르는데, 실제로는 퍼스널이 아니라 패밀리 컴퓨터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의 퍼스널 컴퓨터는 무엇일까? 스마트폰이다. 이제 엄마, 아빠, 아이들, 수많은 독신자들이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혼자 방송을 본다. 소수의 취향에 초점을 맞추고, 화면에 눈을 맞춘 채 진행하는 방송은 1인 가구의 시청자와 아주 잘 어울린다.
1인 미디어, 혼자 만드는 TV는 반대로 보면 혼자 있는 사람들과 마주보는 TV다. 이 시청자들은 거실에서 가족들이 모여 큰 TV로 왁자지껄 채널 전쟁을 하지 않는다. 출퇴근 전철 혹은 카페에서 노트북, 스마트폰으로 혼자 본다. 집에서 TV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1인 가족에 맞춰진 방송은 채널 선택권을 독점하고 있는 시청자들을 위한 방송이다. 이들을 위한 방송은 아이돌 덕후질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하루 종일 개만 나오는 프로그램도 괜찮은 것이다.
먹방, 쿡방, 옷방, 집방 등 의식주 관련의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1인 가구 시대의 특성과 연관되어 있다. 의식주는 전통적으로 가족 속에서 적당히 역할을 나눠 해결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인터넷 방송에서 먹방이 먼저 인기를 모은 것은, 혼밥 생활에 지친 이들이 방송 화면을 보면서 마치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 듯이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쿡방 중에서도 tvN <집밥 백선생> 올리브 TV <오늘 뭐 먹지>처럼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엄마나 누나가 해주는 밥만 먹고 자라난 남자들이 뒤늦게 독신자, 기러기 아빠의 처지에서 혼자 밥을 해먹어야 한다. 반대로 여성들이 직접 망치를 들고 집안 설비를 고쳐야 하는 때도 있다. 이들은 이제라도 방송을 보며 김치찌개를 끓이고, 옷을 리폼하고, 인테리어를 바꾸는 걸 배워야 한다.
<사진출처 : tvN <집밥 백선생> / program.interest.me/tvn/zipbob>
MBC의 <능력자들>과 KBS 조이의 <전국 덕력 자랑-최강남녀> 등 덕후 생활을 권장하는 일련의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맥락을 확인할 수 있다. 혼자 산다는 것의 큰 장점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남들이 볼 때는 지나치게 마니아 취향으로 여겨지는 취미도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다.집 전체를 애니메이션 캐릭터, 수집용 농구화, 프라모델 장난감으로 장식해도 눈치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채널 A의 <개밥 주는 남자> 등 반려동물을 다루는 펫방들에도 1인 가구 시대의 생활상이 녹아들어 있다. 이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취지는 기러기 아빠나 독신남 등 ‘쓸쓸한 남자들을 위한 구급처방’으로 반려 동물을 소개해주는 것이다. 혼자 사는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세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사진출처 : 채널 A <개밥 주는 남자> / tv.ichannela.com/enter/dogpapa>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고잉 솔로 - 싱글턴이 온다>라는 책을 통해 1인 가구가 대세가 된 세상에 적응하라고 이야기한다. ‘혼자 살기’라는 라이프 스타일은 점점 증가하며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또한 지금의 사회는 어느 때보나 혼자 살기 수월해지는 시스템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혼자 살기, 혼자 시간 보내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자라면서 그런 모델을 보지 못했고, 1인 가구의 특성상 남이 사는 모습을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방송이 해야 할 역할은 특별하다. 1인 가구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함과 동시에, 건강한 혼자 살기의 방향타가 되어 주어야 한다.
KOFICE
성명 : 이명석
약력 :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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