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 게시요건 확인]
올 상반기들어 ‘욜로(이하 YOLO)’ 트렌드가 떴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한 번뿐인 인생’이란 뜻이다. 캐나다 출신 가수 드레이크의 2011년 곡 의 한 소절인 ‘인생은 한 번뿐이야, 이게 인생의 진리지 욜로 (You only live once, that’s the motto YOLO)‘에서 시작된 표현이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건강보험 개혁안인 ’오바마 케어‘를 홍보하는 동영상에 직접 나와 'yolo, man'이라고 하면서 유명해졌다. 2016년엔 옥스퍼드 사전에 신조어로 등록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케이블 방송사 tvN의 여행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아프리카를 홀로 여행하는 서양 여성을 보고 출연자들이 감탄하자, 그 여성이 ‘욜로!’라고 화답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며 2016년 말에 국내 페이스북에서 욜로 열풍을 다룬 기사가 이슈로 떠오르고, 2017년 초에 주요 매체들이 일제히 욜로를 신년 키워드로 지목하면서 주목 받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욜로는 한 번뿐인 인생이니 현재를 사랑하고 즐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이유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즐거운 게 최선’이라는 사고방식이 확산되면서 욜로 현상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를 즐기는 삶을 ‘욜로 라이프’라고 하고, 욜로 라이프를 실천하는 이들을 ‘투데이족’ 또는 ‘욜로족’이라고 한다.
욜로와 비슷한 표현으로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있다. 현재를 붙잡으라는 뜻인데 1990년 개봉작인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대사로 유명해졌다. 이 영화가 2016년에, 한국인이 다시 보고 싶은 영화 1위로 꼽혀 재개봉했다. 16년 전 영화를 다시 개봉시킨 것에서도 욜로가 대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꽃보다 청춘>을 통해 국내 시청자들에게 다가간 YOLO / 출처 : 방송화면 캡쳐
한번뿐인 인생, 즐겨라!
<죽은 시인의 사회>는 강압적인 교육에 반하는 내용이었다. 그런 교육은 학생들에게 미래의 출세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 요구한다. 일체의 개인적인 욕망이나 취향 등은 묻어두고 오로지 미래만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이 거기에 반기를 드는 구호였는데 21세기 젊은이들이 여기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더 이상 욕망이나 취향을 억누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의 삶, 나의 가치, 나의 행복을 ‘지금 이 순간’에 적극적으로 향유한다. 과거엔 즐거움(쾌락)을 악이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즐거움 자체가 선이다. 즐거운 삶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두는 사람까지 생겼다.
<아모르 파티>의 역주행도 욜로 현상과 관련이 있다. <아모르 파티>는 김연자가 2013년에 발표한 노래인데 당시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올 들어 한 네티즌이 SNS에 ‘제발 이 노래를 40초만 들어주세요. 이 노래 살려야 합니다’라며 무대 영상을 링크했고, 그게 2만 건 이상 공유되자 급기야 <무한도전>에서까지 소개되며 화제가 됐다.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이런 식의 노래인데 네티즌이 ‘인생의 노래’라며 열광했다. <아모르 파티> 무대를 마련한 <무한도전>은 ‘욜로’ 특집을 진행하기도 했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아모르파티’ 무대를 선보인 트로트 가수 김연자 / 출처 : 방송화면 캡쳐
욜로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분야는 여행이다. 한민족이 요즘처럼 여행에 열광한 적이 없었다. 열심히 모은 돈을 해외여행으로 써버리는 걸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적지도 과거처럼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자신만의 취향을 살려 정한다. 그러다보니 코스가 다양해지고 혼자 여행하는 ‘혼행족’이 늘어간다. 이런 트렌드 때문에 <꽃보다 청춘>, <꽃놀이패>, <뭉쳐야 뜬다>, <배틀 트립> 같은 여행 프로그램이 생겼는데, 그 <꽃보다 청춘>에서 만난 서양 여성이 마침 ‘욜로!’라고 하는 바람에 그것이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여행 열풍이 더욱 거세진 것이다. 여행을 즐기며 매 순간순간을 SNS에 올리는 네티즌에게 다른 사람들이 ‘#yolo’라고 응원하기도 한다. 세계여행에 나선 89세 러시아 할머니 바바 레나의 말이 인터넷에서 주목받기도 했다. “사람은 일생에 단 한 번 죽는다. 그게 언제가 되든 너는 결국 죽을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할 건 아무 것도 없다. 욜로!'
패키지여행을 조명한 <뭉쳐야 뜬다> / 출처 : 프로그램 홈페이지
과거에 집은 삶을 향유하는 곳이 아니라, 좋은 곳으로 옮기기 전에 잠깐 물리적으로 거쳐 가는 공간에 불과했다. 특히 셋집의 경우 내 집 마련 전까지 임시로 사는 곳이어서, 전셋집을 꾸미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욜로족은 내 집이건 아니건, 자신이 현재 사는 공간을 행복하게 꾸미려 한다. 그리하여 한국인이 전셋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인테리어 관련 업종이 뜰 정도다. 또, 과거엔 성인이 되면 오로지 돈을 벌고 축적하는 데에만 집중했다면 요즘엔 취미 향유에 적극적이다. 악기, 사교댄스, 스킨스쿠버, 무선조종 기기 등 다양한 취미에 투자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재밌는 이벤트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성공을 꿈꾸며 도시에서 사는 것보다 지방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려고도 한다. 그래서 요즘 귀촌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웹디자이너 권산 씨는 전감 구례로 귀촌해 <한 번뿐인 삶 YOLO>를 펴냈다.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이 지방 욜로족과 함께 생활한다는 <주말엔 숲으로>도 방영됐다. 이효리의 제주도 귀촌에 네티즌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도 욜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효리는 욜로 현상과 맞물려 지방에 가서까지 트렌드를 주도하는 핫스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며 미래 성공을 위해 노력했던 한국인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닥쳤다고 할 수 있다. 재미, 즐거움, 삶의 질, 즉각적인 자기배려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퍼진 결과다.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취향과 의미를 추구하며 충실한 현재를 살고, 행복을 향유하려 할 것이다.
욜로 열풍의 그림자
그런데 과연 이런 흐름이 행복만을 가져다줄까? 욜로 열풍은 시대의 불안이 잉태한 측면이 있다. 미래가 불안하니까 젊은이들이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과거 고도성장 시대엔 현재를 희생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때는 열심히 공부하면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타게 될 가능성이 높았고, 허리띠를 졸라매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었으며, 집을 사면 저절로 자산이 커졌다. 지금은 세계적인 저성장 국면이고, 불황과 양극화로 미래 희망이 상당부분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지금 현재, 욜로인 것이다. 미래를 위해 고행길을 자처하기보다 지금 당장 즐거운 일에 올인한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고, 재미있는 이벤트가 나타나면 몸을 던진다. 전세를 빼 세계여행을 떠난다. 그런 즐거움을 참고 허리띠를 졸라매봐야 미래에 내가 얻을 것이 없으니까.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현재를 강요했다고도 할 수 있다. 미래희망이 사라지니까 현재만 남은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욜로 현상은 일종의 도피인 셈이다. 세상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희망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시의 편안함, 잠시의 즐거움에 몸을 맡긴다. 이러면 삶의 조건을 장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고 현재 수준에 안주하기 쉽다. 사회적인 차원에선 발전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과거엔 모든 젊은이가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폭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데, 그 에너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나마 욜로 흐름이 자연과의 조화, 정신적 고양 등으로 이어진다면 어느 정도 심리적 안정을 가져오는 효과가 있겠지만 우리 현실에서 욜로는 여행과 찰나의 유흥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당장 편하고 즐거운 것에 돈과 시간을 탕진하는 흐름이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면 나중에 자기 삶에 진정으로 만족하는 것이 쉽지 않다. 순간순간의 즐거움 또는 편안함에 젖어 살다 어느 순간 인생의 공허함에 빠질 수 있다. 요즘엔 ‘탕진잼’이라는 말까지 유행한다. 주머니 속 돈을 그때그때 만족감을 주는 무언가에 다 써버려 쾌감을 얻는다는 뜻이다. <어느날 갑자기 백만원>이 바로 탕진잼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다. 최근 인형뽑기방이 유행하는 것도 탕진잼과 관련이 있다. 탕진이 정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까?
웹툰 작가 ‘현이’가 해석한 탕진잼 / 출처 : 웹검색
욜로=여행 인가, 방송의 역할은?
방송은 욜로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앞에서 언급한 <꽃보다 청춘>의 나영석 PD가 욜로 열풍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여행과 편안함을 향한 열망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화면에 담았다. <꽃보다 청춘>을 비롯해 <삼시세끼>, <신서유기>, <윤식당> 등 나영석표 예능이 모두 그렇다. 시청자는 그런 프로그램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고, 거기에 자극 받아 직접 여행에 나서기도 했다. 나영석 예능은 욜로 열풍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더욱 강화시킨 증폭자이기도 하다.
이것이 방송의 역할이다. 사회 흐름을 반영해 시청률을 올리면서 그 흐름을 더욱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여행 쪽으로 집중되니까 여행 프로그램이 많이 나타났고 그것은 현실의 욜로 흐름을 더욱 여행 일변도로 몰아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무한도전>은 출연자들의 인형뽑기 대전이나 법인카드 쓰기 대결을 통해 탕진잼 흐름을 강화했다. 심지어 <무한도전>에선 돈을 아끼며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이 답답한 ‘바보’ 캐릭터로 비치기도 했다.
방송이 욜로 열풍을 소비적인 차원으로 몰아간다고 할 수 있다.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꼰대의 훈계’라며 무시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무책임이 ‘난 욜로족이야’라는 말로 정당화되는 분위기에서 방송마저 그것을 부추기는 것은 문제다. 지나친 금욕주의도 나쁘지만, 그 반대 방향으로 삶이 소비되는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니다. 결국 지켜야 할 건 언제나 그렇듯이 ‘중용’이다. 무엇이든 극단으로 흐를 때 문제가 터진다. 방송도 이 부분을 명심해야 한다. 과도하게 여행과 탕진의 쾌감 등 욜로 열풍의 한 측면을 반영하면 그것이 현실의 욜로 흐름을 왜곡시키게 된다. 다양한 소재를 개발하고, 욜로 소재를 활용하더라도 여행과 탕진 일변도가 아닌 복합적인 측면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성명 : 하재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