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 새로운 이정표로 기록될 작품의 탄생이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송강호와 공유가 주연한 영화 ‘밀정’(제작 워너브러더스코리아)이다. 뭉클한 서사, 입체적인 캐릭터, 단 한 장면도 흘려보낼 수 없는 밀도 있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완성했다. 올해 한국영화 기대작 가운데 한 편으로 꼽혀온 사실이 결코 무색하지 않은 탁월한 완성도다. 관객의 선택 움직임도 빠르다. 7일 개봉 이후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상영 첫 주말 흥행 1위는 물론 14일 시작하는 추석 명절에도 성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밀정’은 1920년대 항일무장운동을 벌인 의열단의 활약을 그린다. 최근 3∼4년 동안 꾸준히 영화의 소재로 다뤄지고, 흥행 성과도 내온 ‘일제강점기’는 여전히 매력적인 이야기의 창구라는 사실을 ‘밀정’이 다시 증명한다. 항일과 친일로 구분되는 이분법적인 인물의 구조,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주로 담아온 기존 시대극과의 차이도 확연하다. 흑백 논리에 함몰된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니라 힘겨운 시대를 살다간 당시 사람과 사람이 겪는 갈등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사진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밀정’…본격 스파이 영화의 탄생
‘밀정’은 과거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회의를 느끼고 일본 경찰이 된 이정출(송강호), 독립자금을 모아 무력 투쟁을 준비하는 엘리트 청년 김우진(공유)을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단지 친일파와 독립군의 대결로 예상한다면 오산이다. 영화는 ‘남몰래 사정을 살피는 사람’을 뜻하는 ‘밀정’이라는 제목 그대로,누구도 믿을 수 없는 불온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거미줄 같은 관계를 비춘다. 인간미를 잃지 않는 캐릭터들이 만드는 비장미도 돋보인다.
영화의 상영시간은 2시간20분에 달한다. 근래 한국영화가 대부분 2시간에 이르는 상영시간으로 완성되지만 ‘밀정’은 그 보다 분량이 더 길다. 일부 ‘지루하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영화가 담은 서사에 집중하다보면 상영시간은 크게 중요치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밀정’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시대를 그린다. 일본 경찰이지만 독립군에 마음을 진 인물부터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정보를 일본에 흘리는 밀정,그리고 밀정으로 의심을 받다가 진짜 밀정이 되는 인물까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이들이 살아가는 시대다.
연출을 맡은 김지운 감독은 “차가운 스파이영화로 시작했지만 하다보니 이야기도, 인물도 점차 뜨거워졌다”며 “결국 벼랑 끝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당초 감독은 ‘밀정’을 연출하기로 결심한 이후 할리우드 영화 ‘팅거 테일러 솔저 스파이’같은 스파이 영화의 분위기를 닮은 ‘콜드 누아르’를 구상했다. 영화의 색감을 무채색으로 채운 이유도 이런 구상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촬영을 진행할수록 감독은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가 가진 ‘뜨거움’이 감독의 마음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사진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기존 시대극과 ‘밀정’이 차이
‘밀정’은 개봉을 전, 후로 앞서 나온 또 다른 시대극들과 비교의 시선을 받고 있다. 그 중 지난해 1200만 관객을 모은 전지현 주연의 ‘암살’은 주요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 물론 이들 영화의 차이는 확실하다.
‘암살’이 인물과 사건을 대부분 가상으로 설계한 반면 ‘밀정’은 주요 캐릭터는 물론 특별출연으로 등장한 배역, 이들이 한 데 얽히는 핵심 사건까지 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완성했다. 영화화 과정에서 허구의 설정이 다수 가미됐지만 실존인물로부터 모티프를 얻은 만큼 ‘밀정’이 지닌 현실감은 앞선 시대극들과 비교해 높다.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은 실존인물인 조선인 일본 경찰 황옥을 극화한 캐릭터이다. 독립운동이 치열했던 1920년대 실제 일본 경찰의 신분으로 의열단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짧은 기록만 남아있는 탓에 지금도 황옥의 진짜 정체를 놓고 여러 황옥은 지금도 진짜 정체를 놓고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김지운 감독은 “책과 자료에서 찾은 황옥을 바탕으로 이정출을 그렸다”며 “황옥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감독은 역사적 접근이 아닌 실존인물이 가졌을 법한 마음을 ‘상상’해 이야기를 꾸렸다. 김지운 감독은 “실패해도 딛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 실낱같은 희망, 이뤄야 하는 운명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황옥 뿐만이 아니다. 공유가 연기한 독립운동가 김우진 역시 실존 의열단원 김시현을 옮긴 인물이다. 황옥과 친분을 나눴다는 기록에서 출발해 영화에서 송강호와 공유의 관계가 완성됐다. 이 외에도 한지민이 맡은 여성 의열단원 연계순 역시 실존인물인 현계옥을 그대로 옮겼다. 영화의 주요 사건인 ‘의열단 폭탄 운반 작전’도 실제 있던 일이다.
영화는 비록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현실감을 높이는 데는 이 같은 시도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주요 출연진은 물론이고 특별출연으로 나온 이병헌은 의열단장 김원봉을 옮긴 정채산을, 박희순은 독립투사 김상옥을 묘사한 김장옥을 각각 맡았다. 이들은 이견을 갖기 어려운 연기력을 과시하며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사진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송강호…‘밀정’으로 대표작 또 추가
관객에 가장 큰 신뢰를 주는 배우를 단 한 명 뽑으라면 그 자리는 송강호의 몫이다. 이 같은 평가가 과하지 않다는 사실은 ‘밀정’으로 증명된다. 송강호의 이번 선택은 친일파 경찰. 그동안 ‘악역’의 표상처럼 그려진 캐릭터도 송강호가 하면 다르다. 나라를 등지고 일본에 충성하는 단편적인 인물이 아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한계를 뛰어넘은 송강호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값을 스스로 증명한다. “‘밀정’의 방향은 선과 악의 구분처럼 이분법적인 역사관이 아니다. 붉지도, 검지도 않은 색이다”고 밝힌 송강호는 “좌절의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이 겪는 현실적인 고뇌와 갈등을 조명하는, 시선의 각도가 새로운 영화”라고 ‘밀정’을 소개했다.
송강호는 ‘밀정’의 제작이 확정된 직후 가장 먼저 출연 제안을 받았다. 그 제안에 선뜻 응했다. 작품이 가진 매력은 물론 김지운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는 사실도 그의 마음을 앞당겼다. 지금의 송강호가 있기까지 김지운 감독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존재로 통한다.
송강호는 1998년 김지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에 출연하면서 충무로에 자신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반칙왕’,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까지 총 3편을 함께 했다. 이번 ‘밀정’은 네 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송강호는 “외형적으로 일본 앞잡이처럼 보여도 이정출은 사실 처음부터 마음에 소용돌이를 겪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건 김지운 감독의 연출 의도이기도 했다”는 그는 “감독은 얄팍한 인물이 만드는 낮은 세계를 그리지 않았다. 세련된 방식으로, 아픈 시대의 고통을 더 깊게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사진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밀정’ 그리고 주인공 이정출이 지금과 같은 완성도를 갖출 수 있었을지는 의문도 남는다. 지난해 9월 개봉한 영화 ‘사도’에서 아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영조 역을 맡아 자신의 한계를 또 한 번 뛰어넘은 송강호는 이번 ‘밀정’을 통해 자신의 대표작을 추가했다. 그런 송강호를 두고 김지운 감독은 “마음의 빚을 졌다”고 했다.
[ 출처 :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 게시요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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