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 게시요건 확인]
4차 산업혁명을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로 알려진 슈밥(Klaus Schwab)도 4차 산업혁명은 현재 진행중이라서 단선적으로 정의내릴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러니 4차 산업혁명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질문이나 대답에 너무 진을 빼지는 말자. 다만 4차 산업혁명이든, 3차 산업혁명이든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명제를 표현하는 도구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시장은 순응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점만 기억하면 될 일이다.
* KBS (2016. 11. 3). KBS 특별기획 ? 다보스의 선택, 4차 산업혁명이 미래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란 거대 담론보다는 구체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동인(motive factor)이 무엇인지를 식별하고 그에 대한 대응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찰 지경이다. 이 대목에서 숨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면 유난히 도드라진 지점이 눈에 띈다. 바로 ‘인공지능’과 ‘IoT’고, 이 둘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지금과는 조금 혹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건 분명하다*. 이 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인공지능과 IOT가 만들어 내는 세상을 상상해 보고, 그 세상에서 콘텐츠는 어떻게 진화해야 할 것인지를 미리 그려보자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 조영신 (2017. 1). 4차 산업혁명과 미디어 산업. <4차 산업혁명과 뉴스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발표자료
콘텐츠의 귀환
MWC(Mobile World Congress) 2017 키노트 명단에 넷플릭스(Netflix)의 헤이스팅스(Reed Hastings)가 이름을 올렸다*. 주요 모바일 네트워크 사업자와 단말기 사업자들이 주도하던 MWC 키노트(Keynote)에 콘텐츠 사업자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이는 콘텐츠가 다시 대접받는 시대가 되었음을 알리는 징표다. 물론 콘텐츠는 언제 어디서나 편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등장으로 콘텐츠는 플랫폼에게 그 왕위를 양도했다. 시장은 철저히 플랫폼 사업자의 주도로 움직였다. 1980년대 대표적인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디즈니(Disney)와 같은 콘텐츠 사업자였다면, 21세기 글로벌 미디어 기업은 넷플릭스나 유튜브(YouTube)와 같은 플랫폼 사업자였다. 그렇게 시장은 콘텐츠 주도 시장에서 플랫폼 주도 시장으로 바뀌었다.
* https://www.mobileworldcongress.com/speaker/reed-hastings/
MWC 2017 키노트에 이름을 올린 넷플릭스의 공동창업자 헤이스팅스, 가장 아랫줄 왼쪽으로부터 두 번째. ? 출처 : www.mobileworldcongress.com
그런데 이 시장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통로다. 플랫폼들이 넘쳐나고 서비스 차별성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다시 콘텐츠 경쟁력이 중요한 플랫폼 사업자의 경쟁 수단이 되었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점진적으로 늘리기 시작했고, 아마존(Amazon)이나 훌루(Hulu), 유튜브 등도 오리지널 콘텐츠*란 이름의 독점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우수한 콘텐츠를 가진 사업자들에게 구애를 시작했고, 축 쳐졌던 콘텐츠 사업자들이 다시 어깨가 으슥해졌다.
* 조영신(2016. 9. 2). 미디어시장에서 오리지널은? https://brunch.co.kr/@troicacho/17
그러나 과거의 위세와 오늘의 위세는 다르다. 독자적인 유통창구를 가지지 못한 콘텐츠의 수익성은 하락했다. 콘텐츠가 구애의 대상이 되었다곤 하지만 구애의 대상이 되지 못하면 끝장이다. 콘텐츠가 부족했던 시절의 콘텐츠의 위상과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의 위상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선택받을 수 있는 콘텐츠만 위상이 올라갔다. 뉴욕타임스조차도 ‘남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독보적인 콘텐츠’를 확보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고 하는 상황이다*. 선택받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 New York Times.(2017. 1) Journalism That Stands Apart.
고객이 콘텐츠를 호출한다
이 지점에서 새로운 시장 환경의 동인인 ‘인공지능’과 ‘IoT’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아주 거칠게 해석하면 ‘IoT’는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연결이 초연결로 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컴퓨터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사람과 사람과 연결하고 사람과 사물을 연결하고, 기호(taste)와 기호(preference)를 연결한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감에 해당하는 센싱(sensing)이 필수적인데, 이 센싱이 바로 IoT다. 연결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전에는 손에 잡히지 않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마치 뿌옇기만 하던 그림자가 픽셀수가 늘어나면서 실체가 드러나듯이 연결로 인해 정보량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고객이 누구인지를 조금 더 알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해석되고 분석되지 않은 정보는 공간만 차지하는 쓰레기일 뿐이다. 해석하고 분석해야 한다. 쌓이는 데이터의 속도보다 더 빨리 해석하고 분석해야 한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필요해진다. IoT가 감각이라면 감각을 해석해서 의미를 찾아내는 ‘외(外) 뇌’가 인공지능인 셈이다. 오감이 민감해졌고, 민감해진 감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고객이 직접 콘텐츠를 호출할 수 있는 마이뮤직테이스트 ? 출처 : mymusictaste.com
자연히 시장은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고객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 만들어졌다면, ‘IoT’와 ‘인공지능’이 가져올 세상은 고객이 직접 콘텐츠를 호출하는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마이뮤직테이스트(mymusictaste.com)다. 음악시장은 음반 시장과 공연시장으로 나누어진다. 음악 시장의 규모는 대략 500억 달러다. 이 중에서 약 260억 달러가 공연 시장이다. 그동안 인터넷은 음반 시장의 혁신을 가져왔다. 아이튠즈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했고, 음악의 다양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공연으로까지 혁신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레이디 가가(Lady Gaga)나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와 같은 대형 스타조차 저조한 티켓 판매율로 인해 해외 공연이 취소될 수도 있는 것이 공연시장이다. 마이뮤직테이스트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특정 지역, 특정 고객이 특정 콘텐츠를 얼마나 원하는 지를 계량해 냄으로써 공연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마이뮤직테이스트의 방식은 단순하다. 전 세계 음악 팬으로부터의 아티스트 공연 요청을 모아, 크라우드소싱(crowd sourcing) 방식으로 해외 공연을 기획하면 된다. 이용자의 요청이 충분히 공연을 해도 무방한 수준이 되면 해당 기획사가 추진을 하면 그만이다. 고객은 자신이 보고 싶은 공연을 호출할 수 있는 권리를, 기획사는 공연 실패 위험을 낮출 수 있다. 현재까지 마이뮤직테이스트는 총 32개 도시에서 80회가 넘는 콘텐츠를 개최했다. 최근 블락비(BlockB)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공연을 했다.
* TV리포트 김예나 기자 (2017. 2. 26). 블락비, 네덜란드 K팝 콘서트 ‘사상 최대 관객수’
마이뮤직테이스트를 통해 해외 투어가 성사된 K-Pop 아이돌 블락비의 공연 스케줄표 ? 출처 : mymusictaste.com
이것이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면 논란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인공지능도 IoT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의 차용과 진화라는 큰 그림은 공유하고 있고, 인터넷 시장의 진화라는 점은 분명하다. 인터넷은 거래 비용을 줄였다. 콘텐츠 사업자가 전 세계를 돌면서 자신의 콘텐츠를 보부상해야 했기 때문에 소위 투자대비 수익(ROI: Returns on Investment)가 나오지 않는 지역은 가려고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주변 지역을 돌았고,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타인에게 그 권리를 양도했다. 콘텐츠는 전 세계를 돌아다녔을지 모르지만, 그 과실이 온전히 콘텐츠 사업자에게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기술적으로만 보면 콘텐츠가 전 세계의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개연성은 더 높아졌고, 상황에 따라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는 더 늘었다. 무단 복사될 가능성도 높아졌지만, 공공재의 특성상 추가 비용 부담이 없다는 장점은 있었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콘텐츠의 글로벌화지만, 플랫폼 사업자와의 거래 관계라는 제약 조건은 여전했다. 플랫폼 사업자는 범위를 무기로 콘텐츠 사업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낮추려고 했고, 콘텐츠 사업자는 어쩔 수 없이 이 관계를 수용하기나, 해외 시장 진출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마이뮤직테이스트는 고객이 직접 콘텐츠를 호출할 수 있는 직접 거래의 길을 열어주었다. 물론 마이뮤직테이스트라는 플랫폼이 역할을 했다곤 하지만, 콘텐츠와 플랫폼의 위상에서 콘텐츠가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현재의 기술로도 고객이 콘텐츠를 호출할 수 있다면, 미래의 기술은 이것을 상시적으로 만들 것이다.
그럼 아주 고전적인 해법이 나온다. 콘텐츠가 제대로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고객의 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제대로 만들어진 콘텐츠지만 수요처를 발견하지 못해서 성공하지 못한 수없는 콘텐츠가 있었다면 이제는 제대로 의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수요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콘텐츠 사업자가 제2의 유통혁명의 과실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아마존 에코’가 실제로 쓰인 용도를 조사한 도표, 1위는 알람시계이며 음악재생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 출처 : www.businessinsider.com
또 다른 이야기도 가능하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기반 서비스인 아마존 에코는 동영상에 밀린 음악 시장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AI 기반 음성 서비스는 음악을 재생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Kim, 2017. 2. 9). 듣고 싶은 음악을 찾는 과정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80년대 U2의 음악을 찾아서 듣고 싶다면 U2 앨범을 찾고 검색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 통상 5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음성 기반 AI 서비스는 단 5초면 해결된다. 호출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아마존 에코(Amazon Echo)의 인공지능인 알렉사(Alexa)에게 “80 년대의 U2 곡을 연주해 줘” 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각종 음악 데이터가 쌓이고 쌓인 곳에 음성을 인식하는 기술과 데이터를 분석하는 AI가 결합된 결과다. 5분에서 5초로 줄어든 만큼 이용량은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전체 미디어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아마존 에코를 뉴스를 읽는데도 활용하고 있다.
음성인식 기반 서비스 ‘구글홈’을 통해 CNN의 최신 속보를 들을 수 있다 - 출처 : cnnpressroom.blogs.cnn.com
방송도 이 시장에 동참했다. CNN도 구글의 음성인식 기반 서비스인 구글홈(Google Home)으로 들어갔다. CNN이 자랑하는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 울프 블리쳐(Wolf Blitzer), 존 킹(John King)의 목소리로 뉴스를 들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은 화면이 빠진 상태라 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지만, 적어도 음성으로 뉴스를 전달받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은 분명하다. 작동 방식도 아주 단순하다*. “오케이 구글, CNN 들려줘”(OK Google, ask CNN for the latest stories)라고 하거나, “오케이 구글,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CNN 기사 들려줘”(OK Google, ask CNN for the latest on President Trump)라고 하면 그만이다.
* 방송서비스인 CNN이 웹의 시대를 맞아 영상 텍스트화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었는지를 이해하면 영상서비스의 음성 서비스로 전환하는데 고려해야 할 것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Huey, J., Nisenholtz, M., & Sagan, P. (2014). Riptide. 조영신(역). <립타이드: 언론 산업을 수장 시킨 쉼 없이 밀려드는 혁신의 조류 : 대담으로 정리한 언론 산업과 디지털 기술의 대충돌 (1980-현재)>를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호명이다. 검색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불러야 나온다. 검색은 실체를 모르고도 할 수 있지만, 부르는 것은 브랜드를 인지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다시 브랜드가 중요해지고, 브랜드의 힘을 가진 콘텐츠가 힘을 가질 수 있다. 구글 홈의 입장에서는 서비스의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CNN 같은 콘텐츠 사업자를 선택할 것이고, 일단 해당 서비스 사업자가 구글 홈에 진입해서 소비자의 이용 패턴을 장악하게 되면 더 이상 새로운 사업자가 진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시장이 된다.
유통혁명은 특정 사업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통혁명은 지역 상권을 전국 상권으로, 전국 상권을 글로벌 상권으로 바꾸어 놓았다. 모든 동네에 이마트가 들어선 셈이다. 이제는 이마트와 같은 대형 사업자와 거래만 틀 수 있다면 내 상품은 전국 어디서든 유통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 거래를 희망하는 사업자가 너무 많아졌다.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콘텐츠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 보다 정교해진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IoT와 인공지능은 관리의 툴일 수도 있다.
가성비와 품질: 콘텐츠 투자비에 대한 계산 방식
정리하자. 어쩌면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는 유행어일 수 있다. 시장을 포착하는 용어로서 4차 산업혁명의 용도가 다한다면 시장은 또 다른 용어를 찾아 헤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와 의미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시장이 인터넷이 가져온 혁명이 한단계 레벌 업 되고 있고, 그 맥락에서 인공지능과 IOT가 새로운 유통혁명과 생산혁명을 가져온다는 점에만 주목할 필요는 있다.
이용자가 해당 서비스의 필요성과 편의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순간 세상의 기준은 바뀐다. 우리는 그 시장에 놓여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한류를 있게 한 콘텐츠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리고 시장 확대에 맞추어 투입 비용을 상승시킬 수 있다면 한국 콘텐츠는 지금과는 달리 더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늘었고, 접근하는 고객의 수는 늘었지만, 그에 따른 투자를 게을리 한다면 경쟁우위를 잃어버린 수많은 상품처럼 시장에서 소멸할 수 있다.
그래서 다시 콘텐츠의 힘이다. 콘텐츠가 힘이 있다면 새로운 IOT와 인공지능이 가져온 새로운 유통혁명의 시대에서 더 굳건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콘텐츠의 힘은 단순히 쥐어짜낸 아이디어가 아니라 항시적인 투자에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콘텐츠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명제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추천 | 조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