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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Inside

국정농단 이후의 한류와 문화정책(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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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 게시요건 확인] 

비선실세 국정농단은 아마도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사건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저질러온 분탕질은 실로 봉건사회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저급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최순실과 그 주변 인사들의 전횡은 박근혜 정부의 대표정책인 문화융성정책을 비롯하여 주로 문화체육관광부 업무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필자와 같이 문화정책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크나큰 자괴감을 안겨주었다. 나아가 이 사건은 많은 해외 언론을 통해서 보도됨으로써 우리나라를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말았다는 비판의 소리도 많이 들린다. 특히 한류에 대해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많은 듯하다. 그렇다면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 이후의 한류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문화정책은 무엇일까?

한류의 향후 전망


앞으로 한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솔직한 대답은 ‘아무도 모른다’일 것이다.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려고 할 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과거 자료를 토대로 지금까지의 추세를 살펴보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처음 한류 현상이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과정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사회 현상으로서 한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애당초 아무도 계획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기적 같은 성과라는 사실이다. 이 말은 한류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절로 생겨났다는 뜻은 아니다. 한류의 발생에 영향을 미쳤던 요인으로는 한국 대중문화의 경쟁력 향상, 중국 등 동아시아 지역의 정치경제적 변화, 소수 엔터테인먼트 기업가들의 활동, 문화산업의 해외진출을 위한 정부의 지원, 그리고 글로벌 디지털 네트워크의 확산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 각자가 나름대로 한류 붐의 조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요인들이 사전에 준비된 하나의 전략적 구도 속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한류는 누군가(정부든 기업인이든 연예인이든)가 미리 원대한 목표를 설정해 두고 치밀하게 계산된 전략을 시행한 결과로 얻어진 성과가 결코 아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우연히도 1990년대 후반 이후에 합류되면서 발생한 ‘우연의 소산’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류는 “설계되지 않은 성공(Success without design)”인 것이다.


또한 한류의 발생 이후 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과정을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내용면에서 한류의 구성요소가 다양해지는 동시에 지역적으로 그 영향권이 넓어져왔다는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드라마와 대중음악으로 한류가 촉발된 이후 뒤이어 영화, 게임, 캐릭터, 애니메이션, 패션, 음식, 문학, 논버벌 퍼포먼스, 의료관광, 화장품, 한글, 비보이, 모바일 콘텐츠 등 다양한 종목들이 하나씩 ‘한류 패밀리’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또한 처음 한류 바람을 선도하였던 스타 및 작품들의 뒤를 이어 새로운 얼굴들이 연이어 등장하며 해외 소비자들의 마음을 계속 사로잡고 있다. 또한 초창기만 해도 중국, 대만, 홍콩, 베트남 등 몇몇 동아시아 지역에 국한된 한류 바람은 곧 일본을 비롯하여 몽골,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범 아시아권 국가들로 점차 확산되어 나갔다. 그리고 중동 아랍권 국가들과 중남미 지역으로까지 퍼져나가더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미국, 캐나다, 유럽, 러시아 등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권이 확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추세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한류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예견해볼 수 있을까? 작금의 최순실 국정농단은 한류에 찬 물을 끼얹는, 나아가 한류를 위태롭게 만들 정도의 악재일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필자가 보기에 한류는 이미 그 정도 사건으로 휘청거리거나 소멸될 정도로 연약한 갈대는 아니다.


그동안 한류 현상을 다루었던 수많은 연구들을 살펴보면 사실 한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과 비관적인 전망이 뒤섞여 있다. 재미있는 점은 한류가 오래지않아 퇴조할 것이라는 시한부 생명론 혹은 위기론은 이미 한류의 발생 초기부터 계속해서 수시로 제기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어떤 국회의원은 2005년 봄 동남아 지역을 방문·탐방하고 귀국한 후 “한류는 길어야 5년 안에 끝날 것”이라고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었다. 또한 2012년 2월의 해외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던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0%가 “한류의 지속력은 4년 이내”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뒤돌아보면 한류가 소멸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다양한 한류 콘텐츠들이 더욱 넓은 지역에서 더 큰 인기를 얻으며 더 크게 확산되어 온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지난 근 20년 간 한류의 역사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그런데 너무나 즐거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한류는 어떤 특정한 모습으로 굳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진화중인 현재진행형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애당초 한류의 발생 자체가 누구도 계획하지도 않았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우연의 소산이었다. 미래는 물론 불확실하다. 그리고 예전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여전히 한류의 앞날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논자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추세를 돌아보면 한류가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을 넘어 세계 문화사에 한편의 멋진 신화(마치 또 하나의 ‘한강의 기적’처럼)로까지 기록될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럽지만 희망적인 예측을 하게 된다. 아무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기막히게 멋진 아티스트와 콘텐츠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한류 열풍을 계속 키워나가리라는 것이다.


바람직한 문화정책의 방향


한류의 본질은 ‘문화’ 현상이다. 산업, 경제, 일자리, 홍보, 관광 등은 한국 대중문화의 매력으로부터 파생된 부수적인 효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류와 관련된 국가 차원의 정책은 한류의 본질인 ‘문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류가 시사하는 바람직한 문화정책의 방향은 어떤 것일까?


필자는 무엇보다도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류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가운데 발생한 뜻밖의 성공이었다. 사실 문화·예술의 세계는 불확실성과 불규칙성으로 가득 찬 세상이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저렇게 된다”는 식의 법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예술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마음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인데 인간의 감정은 논리적 설명과 예측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순수예술이건 대중문화건 탁월한 실력의 대가 혹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탄생시키는 일정한 공식 같은 것은 없다.


이처럼 문화정책이 타겟으로 하는 세계는 논리와 이성이 아닌 감정과 마음이 지배하는 ‘이상한 나라’이다. 여기에는 어떤 정책을 어떤 조건 하에 실시하면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식의 멋진 인과관계 법칙은 전혀 통용되지 못한다. 문화정책은 기본적으로 기계나 자연이 아닌, 변화무쌍한 사람의 마음을 상대로 하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책결정자들은 철저한 분석과 기획을 통해 세상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기계론적 세계관은 포기해야 한다. 문화에 대한 정책지원이나 투자가 장차 어떠한 성과를 거둘지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문화정책의 세계에서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전혀 예기치 못했던 당혹스럽고 희한한 일들이 언제라도 터져 나올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미래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곧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의미도 된다. 이 때문에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은 두려운 일인 동시에 가슴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어떤 정책을 시행하든 조급한 마음에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기 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보는 것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이상한 나라’에서는 정부의 정책역량이 본질적으로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문화정책의 영역만큼 정부실패의 가능성이 높은 영역도 없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의 세계에서 정부가 마치 ‘백마 탄 왕자’처럼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야만)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허황된 환상이다. 현실의 정부는, 마치 동화 ??미녀와 야수??의 주인공 야수처럼, 돈도 많고 힘도 세지만 매우 투박하고 심미안도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정부가 문화발전을 주도하려고 전면에 나서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그 대신 정부는 자유로운 창작과 경쟁에 걸림돌이 되는 방해물을 제거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리고 재능 있는 인재들이 타고난 끼를 마음껏 발산하며 발전해나갈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정비하는 역할을 담당하면 된다. 또한 정부는 민간부문의 역량을 신뢰해주어야 하며 좀 더디더라도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할 때도 있다. 조급한 마음에 야수의 그 큰 힘을 무지막지하게 휘두르다가는 자칫 원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화의 내재적 불확실성과 정부 능력의 제한성을 고려할 때 문화정책의 본질은 일종의 ‘벤처 투자’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어떤 문화정책이 언제 어디서 어떤 성과를 거둘 것인지 미리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문화정책이라는 씨앗을 뿌린 후에는 싹이 트는 것을 그저 기다리며 지켜 볼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의 책임은 바로 거기까지이다. 정부는 문화발전을 위한 무한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한 문제해결시스템이 결코 아니다. 문화·예술의 세계가 ‘이상한 나라’이고 정부는 ‘야수’와 같은 존재라면 문화정책의 효과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화발전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미래 성과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문화·예술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근사한 정책을 수립한다고 해도 그것이 장차 어떤 성과를 가져다줄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기대했던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고 반대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거둘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벤처투자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무수히 많은 정책시도들이 다 수포로 돌아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렇다고 실패를 두려워해서 정책적 지원과 투자를 중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숱하게 뿌려둔 씨앗 중에서 운 좋게 대박이 한번 터지게 되면 그동안의 그 수많은 헛발질로 인한 손실을 벌충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그 대박이 과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미리 짐작하기가 불가능하니 여기저기에 씨앗을 뿌리는 작업을 중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화정책의 세계에서는 어쩌면 정책 실패란 있을 수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모든 문화정책 하나하나는, 그 단기적 효과가 무엇이든, 그 나름대로 다 의미 있는 ‘nice try’로 이해될 수 있다. 설령 특정한 정책이 당초 목표로 했던 바를 달성하지는 못하였다고 해도 그 자체가 문화·예술 세계에서는 나름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예술가 개인 혹은 커뮤니티 속에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문화자본의 축적을 가능케 한다. 그리되면 언젠가 그 속에서 예전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엄청난 대박이 터져 나올 수 있다. 매우 불확실하지만 그래서 더 스릴 있고 매력 있는 것이 바로 문화정책인 것이다. 그리고 ‘기대하지 못했던 아주 멋진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한류의 가장 큰 교훈이다.


※ 메인이미지 출처 : http://www.globalresearch.ca/corruption-in-the-european-union-scandals-in-banking-fraud-and-secretive-ttip-negotiations/554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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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김정수

약력 :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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