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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4(일)

문화 Inside

한국 대중문화 속 여혐 논란, 지금은 2017년이다.(2017.11.06)

[ 출처 :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 게시요건 확인]  

올해 대중문화의 화두는 단연 여성이다. 여성주의, 여혐, 페미니즘, 이 단어들을 빼놓고 올해 대중문화 경향을 논할 수는 없다. 
지난 8월 개봉한 두 편의 한국영화가 여혐 논란에 휘말렸다. 여혐이란 여성혐오의 준말로 미소지니(misogyny)의 번역어다. 단순히 여성혐오라고 적시하기 보다는 여성에 대한 멸시, 또는 반여성적인 편견 등을 뜻한다.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 여성에 대한 폭력, 남성우월주의, 여성의 성적 대상화 등등이 여혐이란 단어에 포괄적으로 쓰인다.


8월 극장가에 <청년경찰>과 <브이아이피>가 개봉했다. <청년경찰>은 이론파와 육체파인 두 경찰대생이 우연히 눈앞에서 여성이 납치되는 것을 목격하자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브이아이피>는 탈북한 고위인사가 유력한 연쇄살인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그를 잡으려는 경찰, 사건을 덮으려는 국정원, 그리고 북에서 그를 쫓아 넘어온 인물 등이 벌이는 일을 그렸다. 
    두 영화가 논란의 중심에 선 건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 그리고 작품 속 세계관이다. <청년경찰>에선 주인공들이 클럽에서 만난 여인이 뭐 하러 돈도 못 버는 경찰이 되려 하냐고 묻는다. 돈을 쫓는 여인을 만나고, 몸으로 돈을 버는 여인을 구한다. 이 전개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웃음을 이끌지만, 편견의 늪에 빠져있다는 지적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청년경찰>은 질 낮은 범죄자 집단을 외국인 노동자로 묘사해 중국동포들이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 
    특히 <브아이이피>가 연쇄살인 피해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이 질타를 받았다. 여인을 고문하고 죽이는 장면을 마치 스너프 필름처럼 적나라하게 담았다. 등장하는 영화 속 모든 여성 캐릭터들은 ? 심지어 국정원 요원까지도 ? 피해자로서만 기능한다. 사실 한국영화 스릴러 장르에서 여성을 기능적으로만 활용한 게 하루 이틀은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브이아이피>에 대한 여성 관객들의 질타가 더 신랄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왼쪽) 영화 <청년경찰> 포스터 - 출처 : 네이버 영화
오른쪽) : 영화 <브이아이피> 언론시사회 현장 - 출처 : 네이버 영화


두 영화의 흥행성적은 사뭇 다르다. <청년경찰>은 565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반면 <브아이이피>는 137만 명에 그쳤다. 같은 논란에 휩싸였던 두 영화의 흥행 온도차이는 한국영화계에 많은 숙제를 던졌다. <청년경찰>은 강하늘과 박서준, 두 미남배우의 코믹 버디물이 주는 매력으로 이 논란을 이겨냈다. 여성혐오보다는 외국인 노동자 혐오 문제가 더 불거진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청년경찰> 여혐 논란은 꽃미남계로, 외국인 노동자 혐오 논란은 주류의 관심을 얻지 못해 이내 사그러들었다. 
    반면 <브이아이피> 여험 논란은 거셌다. 기자시사회 이후 SNS에서 일기 시작한 <브이아이피> 거부 반응은 개봉 이후 더욱 커졌다. 영화의 모든 초점이 여혐으로만 맞춰지면서 온당한 평가조차 받지 못한 채 극장에서 내려와야 했다.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 이종석 등 화려한 출연진에 <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영화인데도 반응은 차가웠다. 
비록 문제 제기가 비판이 아닌 비난으로, 조리돌림으로까지 비화됐지만 <브이아이피> 여혐 논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론을 제기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과거 <추격자> 같은 스릴러도 비슷하게 여성을 묘사했는데 왜 <브이아이피>에만 가혹하느냐는 지적을 하곤 했다. 만듦새의 차이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지금은 2017년이란 점이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왜 내각을 남녀 5대5로 꾸렸냐는 질문을 받자 “지금은 2015년이니까”라고 답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간 스릴러영화를 비롯해 많은 한국영화들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주인공의 복수 원인, 동기 유발, 민폐, 사랑을 위한 대상화 등등에 국한됐다. 점점 더 커져가는 여성주의 목소리는 이런 문제들을 꾸준히 비판했다. 그리고 여혐이란 방아쇠가 당겨지면 폭발하고 있다. 지금은 2017년이다.  


비단 영화 뿐 아니다.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케이블 채널 Mnet의 <아이돌학교>는 방송 직후부터 어린 소녀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비슷한 콘셉트로 Mnet에서 먼저 선보인 <프로듀서101>도 그런 비판이 없진 않았지만 올해 <아이돌학교>에는 훨씬 비판의 강도가 컸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도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스 라이트’라는 노래에서 “명품백을 쥐기보다는 내 손을 잡아주는/ 질투심과 시기보단 됨됨이를 알아주는”이라는 노랫말과 ‘농담’ 중 “그래 넌 최고의 여자, 감질/쏘(so) 존나게 잘해 갑질/아 근데 생각해보니 갑이었던 적 없네/갑 떼고 임이라 부를게. 임질”이란 가사로 팬들이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드라마와 코미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팔목을 강제로 잡아끌며 키스하는 장면은 이미 해외에서도 비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한국 드라마 팬을 자초하는 해외 시청자들에겐 남성이 여성을 강압적으로 그리는 게 불편하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라디오스타> <해피 투게더>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어린 여성 게스트가 출연하면 꼭 애교를 요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여성의 애교를 요구하는 게 일본의 대중문화와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한국 대중문화에서 주로 드러난다는 점도 예능 한류팬들이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지점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스며든 여성 비하적인 시각은 코너 폐지로 이어지기도 했다. KBS 2TV <개그콘서트>는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사업에서 대표적인 성차별 프로그램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폐지된 코너 ‘사둥이는 아빠 딸’에서 “난 김치 먹는 데 성공해서 김치녀가 될거야”, “오빠 나 명품백 사줘. 신상으로”으로 말하는 장면 등이 문제가 됐다.

     새로운 한류 키워드로 떠오른 한국 힙합은 여혐의 온상지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래퍼 송민호는 “미노 딸래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고 랩을 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힙합 붐을 일으킨 Mnet <쇼미더 머니>로 유명세를 얻은 블랙넛(본명 김대웅)은 ‘인디고 차일드’와 ‘투 리얼’ 등을 통해 여성 래퍼 키비디를 성적으로 모욕했다가 고발당했다.



 ‘사둥이는 아빠 딸’의 한 장면 - 사진 : 프로그램 캡쳐


이처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여혐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한국의 남성중심문화가 무의식적으로 반영된 탓이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관련자들이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나는 여성을 좋아한다, 존중한다” 등으로 해명하는 것도 이런 남성중심문화 영향의 크다. 문제는 문제를 삼기 전에는 문제가 아닌 법이다. 과거에는 이런 표현들이나 묘사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고 앞으로 이런 경향이 더 커질 것이다. 앞으로 대중문화에는 이런 여성주의적인 시각이 담기거나 여성을 더 배려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대중문화의 주요 수요층인 젊은 여성들이 여성주의 목소리를 한층 크게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이런 비판을 검열이라며 반발하기도 하지만 검열과는 다르다고 본다. 지금 한국사회의 조류를 반영하는 것이다. 시대는 그렇게 흘러간다. 
    여성주의, 여혐 논란이 커질수록 한편에선 저항이 상당하다. 여성이 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거나 여성이 남성의 몫을 뺏는다는 소리도 제법 많다. 그리하여 양성평등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잖은 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양성평등을 논하기엔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아직 멀었다. 지금 한국에서 여성혐오 논란이 비로소 뜨거운 건, 그동안 수면 밑에 있던 목소리들이 이제야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OECD 최하위권인 남녀임금격차, 여성 고위 공직자 숫자 등을 고려하면 이제 첫 발을 뗀 셈이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갈수록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페미니즘이 새로운 문화의 조류로 부각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중 여성 비하 논란으로 거센 반발을 샀다. 대선 이후 여성 행진 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페미니즘 대통령을 자부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비교되기도 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더 이상 한국에서만 소비되지 않는다. K팝은 세계 각국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드라마, 한국 예능 프로그램, 한국 영화들도 국경을 넘어 사랑받는다. 이렇게 사랑을 받은 데는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 각국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우리 대중문화가 계속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한류 열풍이 계속 이어지려면 이런 여성주의 시각에 공감해야 한다. 과거처럼 익숙해서, 해왔던 대로라 문제를 삼기 전에는 문제인지 몰랐던 것들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영화계에서는 시나리오 개발 단계부터 이런 여성주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남자들만 가득했던 시나리오에 여성 캐릭터를 넣는 방식으로 바꿔가고 있다. 여성에 대한 잔인한 묘사에 대해서는 <브이아이피>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TV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도 이런 여성들의 문제 제기를 더 이상 경시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하는 중이다. 힙합계에서도 여혐 비판이 끊이지 않자 자기 성찰을 담은 랩이 점점 더 등장하고 있다. 그런 랩이 더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 더욱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발도 더 커질 테지만 그 역시 바뀌는 과정으로 남을 것이다. 더 여성주의적인 콘텐츠, 더 여성주의적인 연예인들이 살아남고 사랑받을 것이다. 
    지난 9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기자간담회에서 주연배우 설경구는 딸로 출연한 걸그룹 출신 설현에게 “백치미가 있다”고 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설경구는 곧바로 공개 사과했다. 과거에는 백치미가 여성의 어떤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표현 중 하나였다. 2017년에는 백치미는 여성에게 모욕적인 단어다. 지금은 2017년이다. 여성주의는 시대의 바람이다. 

성명 : 전형화

약력 : 머니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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