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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Inside

변방의 팟캐스트, ‘그레잇 콘텐츠’로 거듭나다(2017.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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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 게시요건 확인]  

유행어 하나 없던 비인기 연예인 김생민이 데뷔 25년 만에 “스튜핏”이라는 유행어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짠돌이로 유명한 김생민은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한 코너에 출연해 청취자가 영수증을 보내면 소비패턴을 분석하며 합리적인 소비에는 “그레잇(great)” 비합리적인 소비에는 “스튜핏”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콘셉트로 입소문을 탔다. 이후 <김생민의 영수증>은 개별 팟캐스트로 독립했고 이를 눈여겨 본 KBS에 의해 TV에 편성되기에 이른다.


김생민의 인생역전 드라마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건 흥미롭게도 기성 미디어가 아닌 팟캐스트였다. 이제 팟캐스트 콘텐츠가 방송에 편성되거나 방송 포맷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정선희 문천식의 행복하십쑈>,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 등 팟캐스트 포맷이 라디오에 편성됐다. <나는 꼼수다> 멤버들은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SBS <정봉주의 정치쇼>, <김용민의 뉴스브리핑> 등 정치 팟캐스트 인기 라디오 진행자로 각광받고 있다. <나는 꼼수다>가 없었다면 <썰전>과 같은 정치예능 프로그램이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팟캐스트도 한때는 김생민처럼 무명이었고 비주류였지만 지금은 대중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팟캐스트는 애플의 주력 상품이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의 합성어로 현재는 인터넷 라디오방송을 통틀어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한국에는 2000년대 중반 알려졌지만 주목받지 못하다, 2011년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용민 PD, 주진우 시사IN 기자, 정봉주 전 의원이 출연한 정치평론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가 회당 다운로드 100만 건을 넘어서면서 팟캐스트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나꼼수’ 열풍에서 한국 팟캐스트의 계보가 시작된 덕에 한국 팟캐스트 시장의 중심은 정치, 시사 프로그램이다. 지난 4월 기준 팟빵의 100위권 프로그램 중 시사·정치 장르는 33개에 달한다. ‘나꼼수’의 출연진들은 <김어준의 파파이스>, <김용민의 맘마이스>, <정봉주의 전국구>를 진행하며 파생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정치 팟캐스트에 게스트로 출연하던 정치인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정의당은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을 내세운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선보였고 더불어민주당은 19대 국회 당시 진성준, 진선미, 김광진 의원이 출연하는 <진짜가 나타났다>를 제작했다.


여전히 정치일변도라는 지적을 받지만 시장이 커지면서 팟캐스트에 장르가 다양화되는 흐름도 이어지고 있다. 토크를 나누고 사연을 읽는 방식의 전통적인 라디오 방송을 모티브로 하되 자유분방한 표현을 내세운 프로그램이 생겨난 것이다. 개그맨 유세윤, 유상무, 장동민의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처럼 연예인들이 직접 제작에 나섰다. “불금 불우한 루저를 위해”라는 슬로건으로 진솔하게 연애상담을 해주는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장르가 개척되고 있다.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의미의 교양 팟캐스트 <지대넓얕>은 책으로 출간되고, tvN의 인기예능 <알쓸신잡>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교육어학시장에는 <일빵빵영어회화>가 교재판매와 방송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어학교육 팟캐스트에서 부동의 1위를 하고 있다. 출판사인 위즈덤하우스는 이동진 평론가가 진행하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선보였다. 종교 콘텐츠인 <법륜스님의 즉문즉설>도 꾸준히 상위권에 랭크되는 콘텐츠 중 하나다. 스푼라디오라는 이름의 스타트업 기업은 웹툰회사와 제휴를 맺고 웹툰을 음성으로 재구성한 콘텐츠에 도전하고 있다.



국내 팟캐스트 시장은 ‘팟빵’이라는 서비스가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였지만, 콘텐츠가 늘고 주목을 받으면서 NHN벅스가 ‘팟티’를 선보이고 네이버도 ‘오디오클립’이라는 음성 콘텐츠를 선보이는 등 경쟁 구도로 진입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 스피커가 국내외에서 선을 보이면서 음성 콘텐츠 수요는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더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라디오가 있는데 사람들은 굳이 왜 팟캐스트를 찾아 듣는 걸까. 업계 관계자들을 취재하다 보면 한결 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팟캐스트에는 라디오가 하지 못하는 게 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건 ‘정제되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이다. 김용민 PD는 과거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나꼼수’의 인기 배경은 국민의 마음에 호응했기 때문”이라며 “적절한 때 적시타를 날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희 팟빵 대표는 나꼼수의 인기 비결에 대해 “정치적 견해를 술자리처럼 편하게 이야기한다. 정제되지 않은 데서 진정성과 재미가 나온다. 그러니 청취자는 만족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기존 방송에서 느꼈던 갈증을 정치시사 팟캐스트가 채워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추세가 바뀌었지만, ‘나꼼수’ 등장 이전만 하더라도 정치시사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이 어려운 용어를 쓰는 딱딱한 대담 방식으로 지루한 경우가 많았다. 주류언론의 보도는 살아있는 정치권력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나꼼수’는 정치현상과 문제점을 설명하기 위해 성대모사, 비속어, 욕설이 동원되고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뒷얘기와 의혹을 풀어놓았다. 언론이 하지 못하던 정치권력을 향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연예인들이 팟캐스트를 시작하는 이유 역시 다르지 않다.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더라도 방송은 자체심의와 정부의 심의를 받기 때문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생방송이 다수인 라디오에서 말 한마디 실수는 그야말로 방송사고가 되니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대본이 나오고, 그 대본을 여러 차례 검수한 끝에 ‘날 것’이 아닌 ‘정제된’ 콘텐츠가 나올 수밖에 없다.


같은 맥락에서 독자와의 소통에도 한계가 있다. 독자들이 실시간으로 보내는 반응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라디오도 하고 있지만 ‘방송에 나갈 수 있는’ 피드백만 읽어준다. 속칭 ‘19금’성 내용이거나 맥락상 욕과 비속어가 나와야 재미가 유발되는 경우의 사연은 모두 방송에 나갈 수 없다. 반면 방송법으로 심의를 받지 않는 팟캐스트에서는 가감 없이 모든 내용을 다룰 수 있다.



물론, 아무리 날 것이라고 하더라도 나한테 재미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서 기존 미디어에 대한 대중의 두 번째 갈증이 드러난다. 바로 ‘취향저격 콘텐츠’의 부재다. 방송은 말 그대로 ‘broad casting’이다. 넓은 범위의 불특정 다수에게 방송을 하면서 소수의 취향을 저격하기보다는 누가 들어도 무난한 무색무취한 콘텐츠가 많았다. 그나마 타깃 청취자로 삼을 수 있는 건 시간대에 따라 주 시청 층을 나눠 편성하는 정도였다.


반면 하나의 채널을 통해 편성을 하지 않고 인터넷에 올려 사람들이 골라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는 ‘narrow casting’(내로우 캐스팅)이 가능했다. 프로야구의 편파중계를 보듯 선거철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정당, 내가 좋아하는 계파의 입장이 담긴 방송을 찾아 들을 수 있다. 음악이나 책 프로그램도 여러 장르를 망라하는 게 아니라 세부적인 장르 하나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런 콘텐츠가 익숙해진 이들에게 무색무취한 9시뉴스나 아무 장르나 틀어주는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은 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팟캐스트 흥행에는 기술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TV보급 이후 라디오 산업이 무너지는 상황이었으나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핸드폰으로 쉽게 팟캐스트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차에서 운전하며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음성콘텐츠는 영상콘텐츠와 달리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우리도 한번 팟캐스트를 해보자.” 필자가 일하는 언론사 《미디어오늘》도 팟캐스트 ‘미오캣’을 선보였고, 2년째 방송을 하고 있다.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글로 기사를 풀어내는 것 외에 무언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동영상을 만들자니 제작인력이 없고 노하우도 없었다. 반면 팟캐스트는 녹음실을 빌려서 녹음하고 파일을 올리면 되어 비교적 제작이 간단한데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사 내용을 단순히 전달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노하우가 생겼다. 감정이 빠진 딱딱한 기사에는 쓸 수 없는 ‘구어’로 이야기를 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취재 결과물을 담아낼 수 있었다. 기사를 이해하기 더 편하다는 피드백이 왔다. 기사에 언급하지 못했던 취재 뒷얘기, 비유적인 표현, 솔직한 감상을 풀어냈다. 지금은 나름 자리를 잡고 고정 청취자들이 생겼다. 주기적으로 후원해주고 댓글을 다는 독자들이 생겼고, 오프라인 행사도 열었다. 청취자들의 편지와 선물이 회사에 보내지기도 한다.


딱딱하고 진지한 기사를 쓰는 언론도 팟캐스트를 통해서는 색다르게 접근할 수 있고,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 ‘문화산업’ 분야는 어떨까. 콘텐츠의 시대라고 한다. 영화, 연극, 책 등의 문화산업은 뉴미디어 환경에서 콘텐츠 산업으로서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는 최근 사명을 위즈덤미디어그룹으로 바꿨다. 삼성출판사의 ‘핑크퐁’이라는 교육브랜드가 만든 동요 ‘상어가족’ 메들리 영상은 2016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유튜브 동영상으로 2017년 9월 기준 조회수 2,000만 회에 달한다.


더 이상 지상파를 비롯한 주류 방송사가 특정 콘텐츠를 노출해주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지 않는다. 정치에서 시작돼 교양, 코미디, 음악 등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는 팟캐스트의 세계는 열려 있다. 그곳에서 직접 독자와 만나는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독자의 ‘갈증’을 채워주고 ‘취향저격’을 고민하지 않으면 ‘베리 베리 스튜핏’이다. 

성명 : 금준경

약력 : <미디어오늘>뉴미디어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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