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팔라흐는 프라하 까렐대에서 역사와 경제학을 전공하던 21세의 체코의 학생으로 소련의 침략에 대한 저항하는 뜻으로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의 위쪽 국립 박물관 앞에서 1969년 1월 16일에 분신하여 19일에 숨졌다.
그의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배경이 되었던 '프라하의 봄'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프라하의 봄'은 1968년 소련의 지속하는 점령하에서 개혁파인 알렉산데르 두브체크가 1월 당 제1서기를 맡으면서 시작 되었던 자유화 운동으로 4월에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행동강령을 발표하였다. 그 후 언론·집회·출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잠시 동안 '프라하의 봄'이 유지되었으나 같은 해 8월 20일 소련이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약 50만 대군이 투입되면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프라하의 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얀 팔라흐의 분신 같은 점령에 대한 저항은 지속하였으며 약 한 달 후인 1969년 2월 25일 같은 장소에서 또 다른 학생 얀 자이츠(Jan Zajic)가 자신을 불살랐고 1969년 4월 이흘라바 (Jihlava)에서 에브젠 플로첵 (Jan Palach)이 뒤를 따랐다. 이러한 저항이 여론을 뒤흔들었지만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 상황에 충격을 주는 데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후 얀 팔라흐가 분신한 위치에 청동상이 세워지고 그를 기리는 뜻에서 루돌피눔 (Rudolfinum)과 카를 대학 철학부 앞의 광장의 이름을 얀 팔라흐 광장(náměstí Jana Palacha)으로 바꾸었다. 얀 팔라흐가 분신한 다음 해에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독일로 간 체코의 천문학자 루보시 코호우텍 (Luboš Kohoutek)은 1969년 8월 22일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을 1834 팔라흐로 명명하기도 하였다.
지난 2013년에는 유럽 HBO를 통해 '타오르는 불씨(Burning Bush)'라는 타이틀로 3부작으로 방영되었으며, 극장판은 2014년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면서 '카메라로 쓴 가장 모범적인 역사책'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 [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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