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후스는 루터와 칼뱅의 대표되는 종교개혁보다 100년 앞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고 대항하였던 종교개혁가이자 체코 프라하 대학의 총장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체코인들과 스위스 일반 패키지 여행을 하다가 콘스탄츠(Constance)라는 곳에 들렸는데 얀 후스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과 화형당한 곳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체코인들에게 그는 종교적 의미보단 역사적 인물로 더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난다. [운영진]
[얀 후스가 스위스에서 처형/화형을 당하기 전 머물렀던 곳 - 운영진]
[얀 후스가 스위스에서 화형을 당했던 곳 - 운영진]
프라하의 '종교개혁 광장' 중앙에는 후스의 사거 500주년을 맞은 1915년에 세워진 후스의 동상이 서있다. 이 동상의 기단에는 체코어로 이런 말이 적혀 있다.
" 서로를 사랑하라. 모든 이들 앞에서 진실(혹은 정의)을 부정하지 마라. " 후스가 감옥에서 보낸 열 번째 편지의 마지막에 적었던 글이다.
얀 후스(Jan Hus, 1372년? ~ 1415년 7월 6일)는 체코의 기독교 신학자이다. 그는 존 위클리프의 예정구원론을 기반으로 성서를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며, 로마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대립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파문당했다.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화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그가 화형당한 이후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보헤미안 공동체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의 주장은 마르틴 루터 등 알프스 이북의 종교개혁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현재에는 18세기 이후에 설립된 모라비아 교회 혹은 체코 개신교라는 명칭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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