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탈출하기.
나를 강타했던 가장 강력한 인간적 해악에 맞서기 위한 가능한 가장 강력한 대응수단”
1917년 일기에서
카프카의 가족은 1907년 프라하 시청광장에서 500m 떨어진 블타바 강가의 쭘쉽(Zum Schiff)으로 이사한다. 쭘쉽은 당시 막 재개발된 유대인지구에 설된 주택단지 중 가장 화려하고 현대적이었던 곳으로, 블타바 강의 전망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이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 카프카의 가족은 1913년까지 거주하였으며, 카프카의 사실 상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판결 Das Urteil (1913)>과 대표작인 <변신 Verwandlung (1916)>의 초고도 이 집에서 씌어졌다.
쭘쉽이 아버지 헤르만에게는 사회적 성공의 징표 그 자체였다면, 작가 카프카에게 이 집은 아버지의 권위와 사회적 성공에 대한 압박이 짓누르는 공간, 즉 아버지와의 갈등이 첨예화되는 공간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씌인 <판결>와 <변신> 같은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아버지와의 갈등의 등장하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비록 아버지와의 해소될 수 없는 갈등이라는 “인간적 해악”으로 가득찬 쭘쉽이었지만, 카프카가 작가로 발돋움 한 계기가 된 “문학적 돌파(Durchbruch)”가 이루어진 곳도 바로 이 집이다. 1912년 9월 22일 저녁 10시에서 23일 새벽 6시까지의 8시간. 이 ‘신화적인 8시간’ 동안에 카프카의 데뷔작 <판결>이 탄생한 것이다.
이 작품 속에는 그를 짓누르던 근원적 고민, 즉 안정적인 시민적 삶(결혼)과 가난하고 고달픈 예술가로서의 삶(독신) 간의 갈등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공포와 인정욕망이 혼란스럽게 교차하고 있다.
1912년 당시 카프카가 강한 자살 충돌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단편 속 주인공 게오르그도 아버지와의 화해에 처참하게 실패한 채, “익사형”을 선고한 아버지의 “판결”에 따라 이내 강 아래로 뛰어든다. 단편은 다음과 같이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그가 뛰어든 순간 다리 위로는 끊임없는 차량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자전적 단편 속에 게오르그가 뛰어내린 장소는 바로 카프카가 자신의 방 창밖으로 바로 내려다보던 프란츠-요세프-다리(Franz-Josef-Bruecke)와 블타바 강이었을 것이다.
당시 사진: 사진 좌측의 호화로운 아파트 건물이 그의 가족이 거주하던 Zum Schiff이다. 집 정면에 위치한 프란츠 요제프 다리(오늘날 체흐 다리)와 블타바강변.
그의 소설 <변신>의 초고도 이곳에서 작성되었는데, 흉측한 벌레로 변한 게오르그가 깊숙이 자신을 숨기는 방과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는 집의 실제 모델 또한 바로 강가를 면한 카프카의 방과 쭘쉽이었을 것이라 추정해볼 수 있다. 소설 속의 끔직하고 답답한 공간과 현실의 호화 아파트 사이에 존재하는 그로테스크한 간극을 생각해보면, 그가 이곳에서 느꼈던 내면적 고통의 깊이를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삶을 경멸했던 아버지 헤르만의 시선 앞에서 그리고 그가 지배하는 집안에서 그는 스스로를 흉측한 벌레로 느껴야했던 것일까? 소설 속의 게오르그 잠자리처럼 카프카는 가족들의 시선을 피해 자신의 방안 깊숙한 곳으로 피신한 채 ‘경멸스러운’ 작가의 삶을 이어갔다.
현재 사진: 카프카 가족이 살던 Zum Schiff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철거되었고, 현재 그 자리엔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위치해 있다. 카프카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은 분은 이 호텔 5층에 투숙해보는 것도 좋겠다. 단편 <판결>속 주인공이 강물로 뛰어든 체흐 다리 위에는 오늘도 많은 차량과 전차가 오가고 있다.
아버지의 공간으로부터 탈출할 구원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의 처남 두 명 모두 징집되어 전쟁터로 떠나자 누이동생들이 아이들과 함께 친정집으로 돌아왔고, 그 여파로 본가의 공간이 비좁아지자 누이의 빈집은 자연스럽게 카프카의 차지가 된 것이었다. 전쟁이 유럽의 많은 청년들에게 갑갑한 시민적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면, 카프카에게 이 전쟁은 다른 의미에서의 해방을 의미했다. 31세의 그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인력(引力)으로부터 벗어서 홀로 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로 그는 1918년 폐병으로 인해 시청광장의 본가 Oppelthaus로 돌아오기 전까지 누이들의 집을 포함해 여러 거처를 옮겨 다닌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하고, 또 유의미한 곳은 1916년 11월부터 1917년 8월까지 그가 작업실로 사용한 황금소로의 작은 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주요 저작 일부가 이곳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프라하성 외곽에 위치한 이 작은 집을 찾아가기 위해 쭘쉽에서 자리를 옮겨 카프카가 애용했다던 프라하성행 전차에 몸을 실었다.
사진 : 프라하 전차의 모습. 일부 구형전차는 1991년 북한에 수출되어 오늘도 평양 시내를 달리고 있다.
전차에서 내려 카프카가 자주 들렸던 행정법원을 지나 프라하성에 도착하니 긴 줄이 눈에 들어왔다. 테러 위협 때문에 수하물 검사를 철저하게 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개미떼처럼 긴 줄에 하나의 점으로 몸을 보태고, 줄이 줄어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우연히 프라하 성 입구를 지키고 있는 문지기가 눈에 띄었다. 바로 근위병이었다. 그리고 근위병의 모습에서 불현듯 카프카의 단편 <법 앞에서 Vor dem Gesetz (1915)>에서 시골사람으로부터 법의 문을 지키고 있는 문지기의 형상이 떠올랐다.
<법 앞에서>의 모티브를 형상화한 칼 오토 바르트닝(Carl Otto Bartning)의 석판화. 문지기의 모습이 프라하성의 근위병과 닮았는지?
법으로 향한 길은 수 명의 문지기에 의해 가로막혀 있어서 주인공은 첫 번째 문 앞에서 자리를 깔고 입장이 허락될 때까지 기다리지만, 법으로 향하는 길은 끝내 열리지 않고 주인공은 “법 앞에서”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한다. 카프카는 당시도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을 지키고 있는 저 근위대의 모습을 보고 <법 앞에서>의 문지기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일까? 법을 아는 자(bios)와 법을 모르는 자(zoe)의 구분과 ‘배제를 통한 지배’(아감벤)라는 법치(法治)의 현실. 법이라는 쉡볼렛(Shibboleth)를 말할 수 있는 자는 문안으로 들어가 지배하고, 법을 모르는 자는 ‘법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지배받고 착취 받다가 죽음을 맞는다.
사진 : 프라하성 입구를 지키고 있는 근위병의 모습. 근위병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분 짓고,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지배를 위한) ‘법의 알레고리’일지도 모른다.
8월 말의 뙤약볕 이래서 예의 시골사람처럼 하릴없이 출입허가를 기다린 지 40여 분. 마침내 출입이 허가되어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문지기를 지나 성 안으로 들어갔다. 운이 없던 시골사람과 달리 나의 경우 다행이도 350코루나 (약 16,000원)면 족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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