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지를 프라하로 정한 것은 오로지 금전적인 이유였다. 동유럽의 저렴한 물가. 그렇지만 근사한 알리바이가 필요했다. 프란츠 카프카! 독문학 전공자에게 이보다 좋은 알리바이가 어디 있을까? 카프카 전기작가 클라우스 바겐바흐의 책 <카프카의 프라하>를 손에 쥐고 5박 6일의 일정을 떠났다. 그 여행의 기록을 조금 소개하고자 한다.
“프라하가 놓아주지 않는다. 이 고향 땅은 발톱을 가지고 있다”
1912년 일기에서
카프카는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도시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카프카의 아버지 헤르만은 보젝 Wosek이라는 남보헤미아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유대인 거주 제한이 해제되자 왕국의 수도 프라하로 이주해 귀부인용 장신구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상인이었다. 그는 프라하의 유대인 게토인Josefstadt의 가장 끝자락, 즉 구시가와 바로 마주한 곳에 집을 얻어 그곳에서 장남 카프카를 낳았다. 주변부를 벗어나 끊임없이 중심부로 진출하려는 강한 출세욕을 가진 헤르만은 천문시계로 유명한 프라하의 시청광장에 상점을 열 정도로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경제적 성공 덕분에 카프카와 그의 가족은 평생 동안 프라하의 가장 중심부인 시청광장을 중심으로 한 직경 500m 내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휴양을 위해 떠났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카프카는 평생 프라하의 중심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프라하의 마법적 인력에 대해 그는 시청광장에 면한 자신의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여기가 나의 중고등학교, 저기 보이는 저 건물은 대학 그리고 조금 더 왼쪽으로 나의 사무실. 이 조그만 원 속에 나의 전 생애가 포위되어 있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진 설명 :시청전망대에서 바라본 시청광장. 좌측의 빨간 지붕 건물이 카프카 가족이 가장 오래 거주한 오펠트하우스이고 프라하의 상징인 틴 대성당 대각선 좌측의 화려한 빨간 지붕의 건물 1층에 헤르만 카프카의 상점이 위치해 있었다. 구시가에서의 안락한 삶은 그에게 아버지가 주신 축복이자 벗어날 수 없는 저주였다.
사진 : 1층 출구 오른편 두 개의 창이 난 곳에 헤르만의 상점이 입주해 있었다. 뒤편에 연결된 건물과 함께 당시에 중-고등학교(Gymnasium)으로 사용되었으며, 카프카도 9년간 이 곳을 통학했다.
경쟁국인 영국과 프랑스보다 뒤쳐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근대적 산업화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1850년대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오늘날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이 창설된 것도 바로 창업시대Gründerzeit(1850~73) 무렵이다.
이처럼 뒤늦은 산업화와 시민계급의 불충분한 성장의 결과로 독일어권에서는 세기 전환기 무렵 독특한 사회-문화적 현상이 나타나는데, 바로 강렬한 세대갈등이 그것이다. 요컨대 교육과 시민적 교양이 부재하지만 자수성가로‚ ‘떼돈’을 번 아버지 세대와 인문교양 교육을 충실히 받고 부유하게 성장한 자식 세대 간의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극단적 세대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비엔나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초시간적이고 근원적인 욕망-갈등의 구조로 파악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도 다소간 당시의 특수한 세대갈등의 반영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대작가 토마스 만이 소설 <부덴부르크가의 사람들>에서 그려내는 한 부르주아 가문의 몰락사도 그 핵심에 있어 상인적 아버지 세대와 예술가적 자식세대 간의 갈등의 형상화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잘 알려진 카프카와 아버지 간의 갈등, 즉 당대의 자수성가한 여느 사업가와 마찬가지로 장남을 상인으로 키우려 했던 아버지 헤르만과 작가가 되고 싶었던 카프카와의 긴장 가득한 관계도 당대의 세대 갈등의 양상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민적 삶과 예술가적 삶 간의 갈등” 문제를 형상화한 토마스 만을 동경하며 독문학도를 꿈꾸었던 카프카는 아버지의 강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프라하 카렐 대학 법학과에 입학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했던가? 그는 제도 내에서 가능한 가장 짧은 기간인 5년 만에 알프레드 베버(Alfred Weber)의 지도하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1907년 졸업 직후 카프카는 굴지의 보험사 Assicurazioni Generali에 취업했지만, 엄청난 근무량과 스트레스 때문에 곧장 퇴직하고, 1908년에 그의 평생 직장이 될 보헤미아 왕국 산재보험청에 입사한다. 산재보험청은 시쳇말로 ‘신의 직장’이라 할 수 있었는데, 업무종료 시간이 오후 2시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아도 근무시간이 대단히 짧았던 덕택에 그는 퇴근 후에도 문학 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의 신비적 몽환적 문학작품들을 떠올려본다면, 그가 정치사회적 사안이나 노동자 산재 문제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기와 메모와 같은 남겨진 기록들을 살펴보면, 감수성이 대단히 예민했던 그가 직업적으로 매일 대면해야 했던 산재피해 노동자에 깊은 연민과 고통을 느꼈으며, 동시에 인간의 희생을 전제로 작동하는 자본주의-관료제 국가 시스템에 대한 깊은 혐오의 감정을 가졌음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알 수 없는 관료제적 법률 시스템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배경에는 바로 그의 이런 사유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카프카는 이 시민적 직업을 ‘밥줄 Brotberuf’이라고 다소간 경멸적으로 여겼지만, 그가 문학 작업에만 매진하느라 일에 소홀했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성실하고 남에게 밉보이는 것을 싫어한 그는 직장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직원이었다.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그가 폐병으로 인해 1922년 퇴직할 때까지 15년간 근무했던 산재보험청의 건물은 오늘날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현재 호텔로 사용 중인 그의 사무실을 사흘을 기다린 끝에 호텔 직원의 배려로 특별히 구경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는 이 방에서 칼퇴근을 꿈꾸며 창밖으로 분주히 움직이는 대중들을 내다보았을 것이며, 산재로 고통 받는 노동자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산재보험금 지불을 회피하는 회사에 독촉 편지를 작성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생각이 한국의 산재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미쳤을 때, 때마침 자리를 옮길 것을 은연 독촉하는 호텔직원의 기침소리에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방을 빠져 나왔다. <계속>
사진 : 따뜻한 법학박사 카프카가 최초로 취업한 보험회사Assicurazioni Generali의 건물. 하벨광장에 면한 이 건물에서 아직도 선명히 새겨진 Assicurazioni Generali의 이름을 읽을 수 있다.
사진 : 그의 사무실은 현재 호텔의 객실로 사용되고 있으며, 미리 예약하면 2층에 위치한 이 방에 숙박할 수 있다. 영화광 카프카가 즐겨 방문하던 보험청 바로 옆 건물극장도 현재 IBIS 호텔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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