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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슬로바키아 뉴스

[전문가오피니언] 최신 체코 정세 전망(2019.7.16)

[전문가오피니언] 대규모 시위와 연립 불신임 표결 이후 체코 정세 전망

1989년 벨벳혁명 이후 최대 시위

지난 6월 23일 일요일 프라하의 레트나 공원에서는 약 28만 명 이상의 시민이 모여 바비쉬(Andrej Babiš)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동안 수차례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소규모 시위가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군중이 모인 것은 1989년 11월 공산정권을 붕괴시킨 벨벳혁명 이후 처음이었다.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렇게 커진 것은 바비쉬의 유럽연합 구조기금 부정수령과 이해충돌 혐의에 대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중간보고서 내용이 유출되었기 때문이었다. 바비쉬 퇴진 시위를 이끌고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백만 운동(Milion chvilek pro demokracii)’의 설립자 미나르쉬 (Mikuláš Minář)는 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는 사람을 총리로 인정할 수 없다며 그의 퇴진을 요구했다. 미나르쉬는 2018년 2월부터 바비쉬의 퇴진을 요구하는 백만 명 서명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이번에 유출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바비쉬는 지난 25년 동안 250개 이상의 자회사를 거느린 거대 기업 아그로페르트(Agrofert) 그룹을 경영해왔고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유럽연합 구조기금 200만 유로를 수령했으며, 정계 진출 이후에는 바비쉬가 자산을 신탁기금에 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아그로페르트를 통해 상당한 이득을 취해 이해충돌 상황에 있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은 바비쉬가 그동안 수령한 구조기금과 이해충돌로 인한 이익금 4억 5,100만 코룬, 약 1,750만 유로를 반납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향후 유럽연합이 체코에 지급하는 구조기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잠정 결론 내렸다.

조직적인 조사 방해

바비쉬 퇴진 운동 측에서는 바비쉬가 자신의 혐의를 조사하지 못하도록 법무부를 압박하고 있고 최근 자신의 측근을 법무부장관으로 앉히는 등 사법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편 바비쉬는 과거 공산정권 시기의 비밀경찰(StB) 연루설에도 휩싸여 있다. 최근 슬로바키아의 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옛 문서 연구를 통해 슬로바키아 태생의 바비쉬가 공산정권 시기 ‘부레쉬(Bureš)’라는 암호명을 사용하면서 비밀경찰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바비쉬는 이런 내용을 발표한 슬로바키아 학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슬로바키아 법원은 “옛 문서에 그의 이름이 비밀경찰 정보원이라고 잘못 기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바비쉬의 소송을 기각했다. 슬로바키아 법원은 바비쉬가 비밀경찰의 정보원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문서에는 분명 그의 이름이 정보원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밝혔었다.

바비쉬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은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선 그는 유럽연합 측의 감사보고서는 잠정 보고서일 뿐이며 확실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난민 문제를 비롯해 유럽연합과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연합 측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유럽연합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곧 체코를 공격하는 것이며, 근거 없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체코에 지급해야 하는 구조기금을 삭감하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바비쉬는 체코 국내 경찰과 검찰이 자신을 둘러싼 이해충돌 혐의를 조사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이미 사전 조사를 끝낸 경찰 측에서는 바비쉬를 기소하도록 검찰에 요구했지만, 바비쉬는 이런 요구가 있은 다음 날 법무부장관을 자신의 최측근으로 교체하는 등 자신을 둘러싼 혐의를 조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 동시에 경찰이 바비쉬를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하원 의장에게 바비쉬의 의원 면책권 박탈을 요구했지만 바비쉬는 이에 반대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바비쉬는 지난 2019년 6월 23일 체코 일간지 리도베노비니 (Lidové Noviny)와의 인터뷰에서 소문만으로는 결코 총리직에서 사임하지 않을 것이며,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지난 6번의 선거에서 승리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국민들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이번 정부는 성공한 정부라고 강조하고 있다. 연금과 사회복지는 증가하고 있고, 경제성장은 물론 실업률이 최저 수준에 이르러 모든 국민들이 더욱 잘 살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자유가 있지만, 이번 대규모 시위는 과거 공산주의에 반대한 시위와는 달리 자신과 ANO2011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가 곧 자신을 반대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바비쉬와 정치적 동맹을 맺고 있는 대통령 제만(M. Zeman) 역시 “이번 시위는 자유선거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현 정부는 다음번 총선까지 유지되어야 한다”라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바비쉬의 손을 들어주었다.

퇴진 시위에도 여전한 바비쉬의 인기

바비쉬가 주도하는 ANO2011은 지난 2017년 10월 하원 선거에서 기성 정치를 혐오하는 대중들에게 포퓰리즘과 체코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체코판 ‘트럼프주의’를 내세워 제1당이 되었다. 또한 총리를 둘러싼 시위에도 불구하고 2019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ANO2011가 21.18%를 득표해 2004년 유럽의회 선거 당시보다 2석이 늘어난 6석을 차지했다. 이처럼 바비쉬와 ANO2011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여전하다. 바비쉬 개인에 대한 인지도는 지난 2016년 1월 51%에서 2019년 5월 35%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인보다도 높은 대중적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바비쉬의 든든한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제만의 지지율도 같은 기간 56%에서 43%로 하락해서 바비쉬가 자신을 비판하는 대중들의 목소리를 언제까지나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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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내각 불신임안 표결

이런 상황에서 시민민주당, 해적당, 기독-인민당, TOP09, STAN 등 5개 야당은 하원 의원 66명의 발의로 연립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또 다른 야당인 자유와 직접 민주주의는 불신임안 발의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현 정부에 대해서 비판적이기 때문에 다른 야당과 공조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유와 직접 민주주의는 바비쉬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연립내각에 참여한 사회민주당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내각 불신임에 찬성할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또 다른 야당인 공산당은 연립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바비쉬 주도의 연립내각을 지지하고 있어 반대 표를 던지든지 아니면 기권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따라서 야당이 불신임안을 제출했지만, 확실한 불신임 찬성 표는 5개 야당의 의석인 70표에 불과하며, 자유와 직접 민주주의를 포함한다 해도 92표에 불과하기 때문에 불신임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101표에는 부족한 현실이었다.

반대로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바비쉬의 ANO2011과 사회민주당은 93표를 확보하고 있고, 동시에 15석의 공산당의 지지를 받고 있어 실제로는 108표의 불신임안 반대 표를 갖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신임안을 제출한 야당 측에서는 현 연립내각에 포함된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이탈을 기대했지만, 사회민주당 의원 15명 가운데 9명의 표를 가져오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실제로 2019년 6월 26일 실시된 하원의 정부 불신임안 표결은 17시간의 논의 끝에 부결로 끝났다. 시민민주당을 비롯한 5개의 야당이 모두 불신임 찬성 표를 던졌지만 85표를 얻는데 그쳐 가결에 필요한 101표를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향후 전망

이번 하원의 불신임안 표결이 부결로 끝났기 때문에 바비쉬는 당분간은 총리직을 유지할 것이고, 이에 따라 야당과의 대립이 더욱 거세질 것이다. 동시에 부정한 기금 수령과 이해충돌을 주장하는 유럽연합과 이를 부정하는 바비쉬 간의 대립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비쉬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며 따라서 대통령 제만의 국내 정치 개입도 예상된다.

한편 이번 불신임안 부결로 인해 하원은 당분간은 바비쉬 및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할 수 없게 되었다. 헌법에 따라 총리 및 내각 불신임은 1년에 2회 실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두 번의 불신임안을 표결한 하원이 다시 불신임안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1년을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설령 1년 후에 바비쉬 및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을 제출한다 해도 여전히 3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고, 소수내각이긴 하지만 공산당의 암묵적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하원에서 불신임이 통과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비쉬를 퇴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다. 현재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배정된 문화부 장관의 임명을 둘러싸고 연립내각 내부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인데, 사회민주당은 자당의 인사를 차기 문화부 장관으로 추천했지만, 대통령이 해당 후보자의 임명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체코 헌법에 따르면 총리가 각료를 추천하지만 임명은 대통령이 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해당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사회민주당은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이자 개인적으로도 가까운 총리가 나서 대통령을 설득하라고 독촉하면서 대통령이 사회민주당 소속 인사를 문화부 장관에 임명하지 않을 경우 연립내각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만약 바비쉬 총리가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사회민주당이 연정에서 탈퇴할 것이고, 이렇게 된다면 당초 연립정부 구성 협정에 따라 연립정부가 붕괴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대통령은 임시내각을 임명하든지 아니면 조기 총선 실시를 요청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바비쉬는 어쩔 수 없이 총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둘째, 바비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더욱 격화될 경우에 바비쉬의 자발적 퇴진도 예상된다. 지난 6월 23일 시위의 규모가 28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며 민주주의를 위한 백만 운동 등의 시민사회는 바비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전국 규모로 확산시킬 계획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시위의 규모가 더욱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자이퉁의 예측대로 우선은 총리직을 사임하고 이해충돌 등의 혐의를 벗은 이후 다시 복귀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바비쉬는 다음번 총선까지 권력을 유지할 것이며, 이에 반대하는 국내의 시민사회와 야당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유럽연합과의 지속적인 충돌을 벌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런 측면에서 대내적으로 민주주의 역행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유럽연합과 대립하는 폴란드, 헝가리에 이어 체코도 비슷한 노선을 따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관련정보] 

[출처 : EMERiCs - 운영기관(KIEP)/ 원문 포스팅 Lin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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